툰베리는 왜 팔레스타인으로 갔나?
선진국 중심 기후정의 반대 … 세계 기후난민의 80%는 여성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자유선단연합 활동가 12명을 태운 매들린호가 결국 이스라엘 해군에 저지당했다. 이들은 이달 1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뚫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분유 등 구호품을 싣고 떠났다. 최초의 팔레스타인 여성 어부 이름을 딴 매들린호는 우리나라 ‘희망버스’와 같은 ‘희망보트’였다. 이 배에는 구호품만이 아니라 인류애와 연대, 희망이 실려 있었다. 전세계의 눈과 귀가 이 배에 쏠렸다.

9일 오전 2시 50분 이스라엘 해군 특수부대 샤예테트13은 가자지구 인근 공해상에서 매들린호를 나포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 외무부는 매우 냉소적인 논평을 내보냈다. “쇼는 끝났다. ‘셀카 요트’ 탑승객들은 모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가자지구에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지만, 인스타그램용 셀카를 찍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머리 없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툰베리가 추방된 직후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활동가 1000여명이 튀니지에서 가자지구로 출발했다. ‘수무드(Sumud)’ 호송대다. 수무드 호송대와 ‘가자를 향한 행진’ 참가자들은 현재 이집트 카이로에서 발이 묶였다. 가자지구 진입이 불허되고 있지만 그 수는 점점 더 늘어난다.
수무드는 ‘확고함’ 또는 ‘확고한 인내’를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자기 땅을 지킨다는 뜻이다. 수무드의 상징은 올리브나무다. 또 다른 상징은 어머니, 임신한 모습으로 묘사된 여성 농부다.
이스라엘 정착민과 경찰, 군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올리브나무를 불태운다. 팔레스타인 농부의 수입원을 없애고 그 땅을 빼앗기 위해서다. 토지법도 ‘일정 기간 경작하지 않으면 그 땅은 이스라엘에 귀속된다’고 일방적으로 바꿨다. 1947년 유엔 분할안 당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영토는 50:50 정도였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땅은 1/5 크기로 줄었다.
툰베리는 1일 출항 기자회견에서 “이번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대량학살 앞에서 전세계가 침묵하는 것만큼 위험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은 2023년 10월 하마스 공격 이후 시작됐다. 공습은 나치보다 더 잔악한 수준이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023년 10월 7일 이후 팔레스타인 주민 5만5104명이 사망하고 12만7394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절반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다. 우크라이나전쟁 민간인 사망자 1만2000여명의 4.5배다. 우크라이나 전선은 1600㎞에 이르지만 가자지구는 남북 40㎞ 동서 10㎞에 지나지 않는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
국제앰네스티는 2023년 10월부터 팔레스타인 희생자와 목격자, 의료진 등 212명을 인터뷰하고 현장조사를 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민간인 밀집지역 반복적 공습 △의도적인 아동병원·학교·보호소 공격 △식량·물·의약품 차단과 통행제한 △국제법상 금지된 백린탄 사용 정황 등이다.
한 정신과 의사가 가자지구에서 10살 팔레스타인 아이를 인터뷰했다. 아이는 “친구들이 죽었어요. 며칠 동안 말도 못하고 먹지도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친구들은 천국에 갔을 거야”라고 달래자 아이는 “친구의 머리가 없어졌어요. 머리 없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자식들을 안고 울부짖는다. 그들은 ‘헤로도토스의 경구’로 서로를 위로한다. “평화로울 때는 자식이 부모를 묻지만, 전쟁이 나면 부모가 자식을 땅에 묻는다.”
국제앰네스티는 3월 5일 다음 사항을 공식 요구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 △인도적 지원과 의약품 접근을 전면 허용하라 △모든 관련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 △전쟁의 피해자인 어린이들에게 보호를 제공하라.
빵 배급소에 줄 선 사람들까지 살해
최근 이스라엘 군은 가자 전역에 전례 없는 폭격을 퍼붓고 있다. 난민캠프 피난처 병원, 심지어 빵을 받기 위해 줄을 선 곳조차 공격 대상이 되었다. 최근 5일 사이에 300명 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었다. 대부분 여성 어린이 노약자였다. 먹을 것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15일 팔레스타인 보건부는 사상자 공식 발표를 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인터넷을 끊었기 때문이다. 구급대원들은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2025년 3월 2일 이후 60여일이 넘도록 가자지구에 물 한방울도 반입시키지 않았다. 모든 구호단체의 활동을 금지했다. 오직 급조한 배급단체 ‘가자 인도주의재단’을 통해서만 제한적인 식량 배급을 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음식 의약품 의사 간호사와 함께 가자지구에 그들의 해군을 보내야 한다.”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의 말이다. 국제인권 변호사 크레이그 모카이버는 “유엔 보호군 파견, 이스라엘의 유엔 제명, 강력한 제재, 금수조치, 그리고 책임 추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은 16일 성명을 내고 “네타냐후는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하고 가자지구 민간인을 공격한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전범”이라며 “지난 2주 동안 이스라엘 군은 이스라엘정부가 운영을 허가한 소수의 배급시설에 접근하려던 수백명의 민간인을 살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대계지만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
식민지 수탈구조에 기후위기 닥쳐
툰베리는 왜 가자지구로 갔을까? 어린 시절 식이장애를 겪었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졌던 한 소녀가 이제 스무살이 되었다. 그는 “부유한 나라들이 탄소배출을 더 빨리 줄여야 가난한 나라들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정의의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가난한 이들과 손잡고 ‘정의로운 전환’을 강조한다.
기후위기를 서구의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전세계 탄소의 4%만 배출하는 아프리카는 기후위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가장 심각하게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은 대부분 식민지배를 겪었다. 그때 만들어진 식민자본의 수탈 구조에 기후위기까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체 왜 세계 기후난민의 80%는 여성인가? 무슨 잘못으로 굶주린 채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하는가? 서구가 책임을 져야 한다!” 툰베리와 함께 다보스포럼에 초대된 바네사 나카테의 말이다. 우간다의 여성 활동가인 그는 아프리카의 청소년 기후정의운동 ‘일어나세요 운동(Rise Up Movement)’을 주도한다.
2025년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최소 1250만명의 소녀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다. 가뭄이 들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소녀들은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와야 하고, 조혼을 하고, 성폭력에 시달린다. 가뭄과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아프리카의 시골 소녀들은 단 4%만 학교에 다닌다.
2009년 5월 시속 110㎞/h의 사이클론 아일라(Aila)가 인도를 강타한 후 콜카타(Kolkata)의 성매매 여성들이 20~25% 증가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 이재민들은 도시 슬럼가로 흘러들고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성매매의 늪에 빠진다. 태풍과 가뭄이 오면 가난한 여성들 성매매가 늘어나는 게 오늘날 기후위기의 민낯이다. 테슬라 사이버트럭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착취를 ‘파트너십’으로 포장”
기후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 먼저 기후위기가 왜 발생하는지 정치·경제적 책임을 따져야 한다. 기후위기가 어떻게 전세계적인 불평등을 심화하는지, 이런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한손으로 원조를 주며 다른 한손으로 우리 생명을 빨아간다. 마을에 우물을 파주면서 당신들의 기업은 우리의 강을 말린다. 선진국들은 기후행동을 외치면서 숲을 불태우고 호수를 말리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한다. … 이런 착취를 ‘파트너십’으로 포장하는 세계질서를 거부한다. 아프리카는 더 이상 자선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의를, 우리가 우리 운명을 개척하길 원한다.”
이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이부라힘 트레오레 대통령이 전세계에 전하는 메시지다.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