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 푼 난제, 시민 숙의로 푸나
선거제도·연금개혁·탄소중립 목표까지 3번 실험
전문가까지 참여해 토론·질의응답 등 ‘숙의’ 거쳐
연금개혁 공론결과, 입법·정책화로 ‘효용감’ 경험
‘편향성’ ‘국민대표성’ 제기하며 수용거부 잇달아
16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후특위 탄소중립 공론화위원회의 백서를 전달받고 공론화에 참여했던 미래세대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탄소중립 공론화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국회 기후특위 공식 의결로 공론 절차에 착수했고 지난 13일에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공론화는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위한 국민 숙의과정이었다. 2024년 헌법재판소는 ‘2031~2049년’에 적용할 ‘대강의 정량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것은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탄소중립기본법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올해 2월까지 법을 고치라고 지정했다. 공론화위원회는 전국 만 15세 이상 1만명을 대상으로 기초조사를 진행한 뒤 시민대표단 300여명과 미래세대 40명을 선정해 4차례의 숙의 과정을 거쳤다.
‘학습이 없는 상태’, ‘초기 학습 후’, ‘토론 등 숙의 후’ 등 3차례에 걸친 조사를 보면 큰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의제에 대한 숙지, 숙의 과정 이전과 이후가 크게 달랐다. 전문가들은 이를 ‘숙고의 결과’로 봤다. 민주당은 이 결과를 토대로 이달 중 입법에 나설 예정이다. 위성곤 국회 기후위기특위 위원장은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탄소중립법이 현재 위헌 상태로 남아있는 만큼 이달중 공론화 결과를 토대로 단일안을 만들어 통과시킬 예정”이라며 “필요하면 원내 지도부간 원포인트 협상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입법 공론화는 벌써 3번째다. 2023년 5월에 정치개혁특위는 선거제도 개혁을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가동했다. 공론조사의 의제는 △선거제도 개편의 원칙과 목표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구의 크기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방식 △지역구·비례대표 의석비율과 의원정수 등 4가지였다. 시민참여단 500명이 참여하고 한국방송공사와 지역총국이 함께 했다. 전문가들의 발제와 토론, 시민참여단의 질의응답으로 ‘숙의’가 펼쳐졌다. 하지만 공론 결과를 입법에 반영하는 데는 실패했다.
연금개혁특위의 공론화위원회는 2024년 1월에 공식 출범해 21대 국회 막판에 연금개혁안을 내놨다. 노동자·사용자·지역가입자 등 비전문가 50명이 ‘의제 숙의단’을 구성해 연금개혁 전반에 대한 학습을 마친 뒤 설문지를 만들었다. 500명의 ‘시민대표단’으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는 숙의 과정을 거쳐 최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자료 공개를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TV 방송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숙의 과정을 공유했고 전문가들의 설명과 답변도 지원됐다. 2025년 3월엔 공론 결과가 일부 반영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돼 올해부터 효력이 발생됐다. 기존 9%였던 보험료율은 매년 0.5%p씩 인상돼 오는 2033년에는 13%까지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40%에서 43%로 늘어났다. 더 내고 더 받는 구조다. 또한 국가의 국민연금 지급 책임을 법률에 명시하고, 국민연금 지급을 위한 시책을 수립 및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군 복무나 출산 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하는 ‘크레딧제도’도 확대한다. 저소득층의 보험료 부담을 줄이고 수령액을 늘리는 방안도 제도로 보완됐다.
세 번의 공론화위원회 운영을 책임진 김춘석 한국리서치 공론화센터장은 “이번 탄소중립 공론화도 지난 선거개혁, 연금개혁 공론화와 같은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번에는 여야 간사가 같이 모든 과정에 참여해 편향성 논란을 사전에 제거하려 했다”며 “질문 문항 등은 참여자들이 직접 만들고 자료도 모두 공개했다”고 했다. 이어 “실제 공론결과가 입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상당히 신중하고 책임감을 갖고 임하는 것 같았다”며 “행정안전부도 시민의회 등 공론화위원회를 추진하고 있는데 입법부는 입법을 전제로 하는 만큼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첨예하고 정치화될 가능성이 높은 의제에 대해서는 ‘편향성’을 제기하며 수용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나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대표인데 다시 국민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면서 “국민들의 숙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 자체도 의미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