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잠자고 있는 ‘생명안전기본법’
세월호참사 12년 지났지만 입법 제자리
시민사회 "추모 넘어 제도화" 요구 확산
2014년 4월 16일 그 잔인했던 봄날로부터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국가의 부재 속에 스러져간 304명의 생명 앞에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사회적 약속은 ‘생명안전기본법’ 에 담겼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6일 내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생명안전기본법’은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지난해 3월 박주민·용혜인·한창민 의원 등 77명이 공동 발의했다. 이후 공청회가 한차례 진행됐지만 본격적인 법안 심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법 제정 필요성을 공식화한 상태다. 이재명정부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국정과제로 제시했고 대통령 역시 안전 관련 회의에서 국가의 기본 책무로 ‘생명과 안전 보장’을 강조해왔다. 다만 국회 논의가 지연되면서 당초 ‘세월호참사 12주기 이전 처리하겠다’는 목표는 무산됐다.
법안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권리를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정부 기업의 책무를 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난 예방 단계에서 정책과 사업의 위험도를 점검하는 ‘안전영향평가’ 제도 도입, 재난 발생 시 독립적으로 원인을 규명하는 상설 조사기구 설치, 피해자 권리 보장 등이 핵심이다.
특히 조사체계 개편 요구가 핵심 쟁점으로 꼽힌다. 현재 재난조사는 분야별로 분산돼 있고 상당수가 비상설 기구로 운영돼 진상규명과 책임 규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법안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상설·독립 조사기구를 두고 재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기능을 일원화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국회 논의가 지연되는 배경에는 여야 간 입장 차이도 작용하고 있다. 법안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권한 범위와 기존 제도와의 관계, 입법 우선순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심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행안위 논의 역시 다른 법안에 밀려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시민사회는 입법 지연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5일에는 국회에서 세월호참사 피해 단체와 시민사회, 정치권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 규명 등을 촉구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16연대 등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며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국회가 입법을 미루는 사이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16일 경기 안산에서는 단원고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식 기억식이 열리고, 인천에서는 일반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이 진행됐다. 전남 목포와 진도 해역에서는 선상추모식과 현장 기억행사가 이어지며 참사의 공간에서 기억이 이어졌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도 시민대회와 문화제, 영화 상영, 걷기 행사 등 다양한 방식의 추모가 확산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5.18민주광장을 중심으로 시민분향소와 청소년 기억문화제가 운영되고, 참사 당일에는 시민 참여형 기억행사가 이어진다. 해외에서도 영화 상영과 걷기, 온라인 추모가 진행되며 기억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추모 열기를 제도로 완성해야 한다는 요구 역시 커지고 있다. 세월호참사 12주기를 맞은 올해 ‘기억’은 다시 ‘입법’이라는 과제를 향하고 있다.
김순길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15일 국회 앞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의 처절한 12년은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죽음의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한 국가 부재의 증거”라며 “참사가 날 때마다 책임을 떠넘기는 단편적 대응을 끝내고 국가와 지방정부의 생명 보호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해진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도 “참사 이후가 아니라 이전부터 작동하는 안전 체계, 피해자가 권리 주체로 설 수 있는 법적 근거, 상시적 조사 기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신일·홍범택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