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긴장에도 미국 셰일오일 생산은 ‘잠잠’
트럼프 증산 권고에도
시추업체들 소극적 반응
중동 지역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셰일오일 생산업체들은 여전히 증산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 과잉 우려, 비용 상승 등 복합적인 요인 때문으로 분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중동의 위기가 지역 전면전 수준으로 고조되자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이라며 자국 에너지부에 증산을 촉구했지만, 미국의 시추업체들은 즉각적인 대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텍사스 시추업체 엘리베이션 리소스(Elevation Resources)의 CEO 스티븐 프루엣은 “이번 유가 급등은 거품”이라며 단기적 가격 상승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유정 수는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다이아몬드백 에너지(Diamondback Energy)와 EOG 리소스(EOG Resources) 같은 주요 셰일 업체들조차 올해 투자 축소 계획을 밝힌 상태다.
베이커휴즈에 따르면 퍼미안 분지의 유정 수는 2021년 말 이후 최저 수준까지 감소했다.
셰일 업계의 신중한 태도는 몇 가지 구조적인 배경에서 비롯된다. 첫째, 글로벌 수요 둔화와 OPEC+의 공급 증가로 인해 시장은 이미 원유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둘째,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시추 장비 비용이 증가했으며, 일부 기업은 관세로 인해 웰 케이싱(시추공 보호용 강관) 가격이 10%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셰일 유정은 생산량이 빠르게 감소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생산을 늘리려면 상당한 현금이 추가 투입돼야 하며, 투자자 분배금이 그만큼 줄어든다. 다이아몬드백 측은 “배럴당 65달러 이상이 유지되어야만 생산 확대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 상황 속에서도 유가는 급락세를 보였다. 23일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일 대비 12% 이상 하락하며 배럴당 65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란이 미국의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전쟁 확대가 아닌 긴장 완화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시장은 해석하고 있다.
트레이더들은 이란의 카타르 내 미군 기지 공격이 에너지 인프라나 유조선에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것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과 이란이 곧 휴전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히자 유가는 추가 하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을 현실화할 경우 미국 셰일업체들이 시추장비를 다시 늘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해당 해협은 전 세계 석유 물동량의 약 20%가 지나는 전략 요충지로, 봉쇄 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대형 상장사들은 자본 지출에 있어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어, 실제 증산까지는 수 주간의 고유가가 지속돼야 계획 변경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유가 변동성과 지정학적 리스크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미국 셰일업계는 월가의 기대와 시장 균형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한 방관적 대응으로 비쳐지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