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사업화 현장을 가다 2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기술개발 시작부터 수요기업 선정…성장 단계별 지원
적층세라믹콘덴서용 니켈분말 제조기술 사업화
최근 3년간 기술이전 868건, 특허출원 1903건
대한민국 정부 과학기술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2015년부터 세계 5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R&D 효율성 측면에선 낙제수준이다. 실제 R&D를 통해 얻어지는 논문 수는 세계 12위 정도에 머물러 있다. R&D 결과물을 상용화로 이어가는 기술사업화 비율은 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바닥 수준이다.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R&D가 되기 위해선 기술사업화 비율을 높여야 한다. 내일신문은 정부 R&D 예산이 투입되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술사업화 현장을 살펴본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은 1989년 설립된 실용화 전문 연구기관이다. 중소•중견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용화 중심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개발된 기술을 산업현장으로 이전해 제품 실용화를 지원하고 있다.
친환경·고기능성 합금인 에코-마그네슘(Eco-Mg)과 에코-알루미늄(Eco-Al) 원천 소재 기술, 주조용 친환경 무기바인더 기술, 3D 프린팅을 이용한 인공 뼈(흉곽, 두개골, 골반) 제작 기술, 세계 최고 수준의 평탄도를 구현한 반도체 도금액 원천기술 등 산업적 파급효과가 큰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이전한 것 등이 대표적인 성과다.
최근에는 전자산업 핵심 부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전극용 니켈 미세분말 제조 기술을 국내 기술로 구현 기술이전해 수입 의존도가 높던 고기능 금속 소재의 자립화 기반을 마련했다. 단계별로 연계된 연구개발(R&D)과 사업화 프로그램을 통해 양산 가능성까지 확보 후 기술이전을 수행한 대표적 기술사업화 성공 사례다.
◆고기능 금속 소재 자립화 기반 마련 = 적층형세라믹콘덴서(MLCC)는 전자기기 내에서 전류 흐름 안정성을 유지시켜주는 핵심부품이다. 전기를 보관했다가 일정량씩 내보내는 ‘댐’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에 약 1000개, 노트북에 약 3000개가 들어간다. 크기가 좁쌀보다 작지만 반드시 필요한 부품이기에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 국내에선 삼성전기 등이 세계 MLCC 시장을 놓고 일본 무라타 등과 경쟁하고 있다.
MLCC 제조를 위해선 다양한 소재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니켈분말은 내부 전극형성을 위한 물질로 필수소재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제조기술이 없어 현재 사용되고 있는 80~400나노미터(nm, 10억분의 1m)크기 분말 전량을 일본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생기원은 니켈분말 제조기술에 대한 수요를 파악한 후 2019년 고순도 MLCC용 니켈 나노분말 제조기술 개발에 나섰다. 기술개발 첫 단계로 독자구조 화학기상합성 장비 설계 기술부터 시작해 현재는 기업으로 기술 이전 후 니켈 분말 양산화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생기원은 특히 개발된 기술 상용화를 위해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성과를 활용할 수 있는 수요기업을 선정해 협업을 추진했다. 국내에는 MLCC용 니켈분말을 생산하는 기업이 없어서 분말을 수입•가공해 MLCC 제조사에 공급하는 ‘에프엠’을 수요기업으로 선정했다. 에프엠은 현재 니켈분말 양산평가와 제품 적용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니켈분말 제조기술을 개발한 생기원 강원기술실용화본부 양승민 수석연구원은 “현재 80나노 니켈분말이 시장에서 수요가 많다”며 “생기원이 개발한 기술은 50나노 수준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상당기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제조기술 핵심인 기초장비 제조기술을 확보했다”며 “앞으로 1~2년 안에 국내에서 제조한 니켈분말을 MLCC 제조기업에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5년간 1425건 기술이전 = 생기원은 지난 5년간 총 1425건의 기술이전 계약을 통해 약 420억원의 기술료 수입을 기록했다. 기술사업화 실적으로는 과학기술분야 23개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이어 두번째 규모다.
이 같은 생기원 기술이전 성과는 R&D를 통해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기업 수요를 반영해 생산 현장 적용이 가능한 기술로 향상시켜 기술이전 확률을 높이는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다.
이를 위해 기업주문형사업, 스케일업(Scale-up) 사업 등 기술사업화를 위한 다양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업주문형사업은 기업이 요구하는 기술 사양에 맞춰 보유특허 경험 전문인력 연구장비 등을 활용해 현장 맞춤형 기술개발과 성과물을 이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스케일업 사업은 기술이전 전 단계에서 기술 신뢰성 확보를 위해 시제품 제작과 시험인증 등을 지원하고 기술이전 이후 상용화를 위한 후속 R&D를 지원한다.
◆기술성숙도 맟춰 맞춤형 사업화 지원 = 생기원은 외부에 발표한 기술 개발 성과 가운데 기업들 관심이 높고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큰 기술을 ‘유망 새싹기술’로 선정해 사업화를 지원하고 있다.
새싹기술은 기초연구 단계부터 상용화까지 기술성숙도에 따라 단계별로 지원하는 사업화 전략의 일환이다. 새싹기술은 씨앗기술과 묘목기술로 분류할수 있다. 씨앗기술은 장기간 성숙이 필요한 기초·원천기술을 의미한다. 묘목기술은 단기간 내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로 빠른 시장진입이 가능한 기술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류를 통해 생기원은 기술성숙도에 맞춰 기술개발 사업화 기술이전 등 맞춤형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생기원은 창업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창업자 친화적 환경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단적인 예로 생기원은 연구원 창업자에 부여되는 보장 기간도 기존 겸직과 휴직을 포함해 최대 6년까지였던 것을 최대 10년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