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요동치는 국제질서, 한반도 평화 기회로 삼자
5-3-1. 이 세 개 숫자는 국제안보 전문가들에게 낯익은 숫자다.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은 5개 국가, 소위 핵클럽(Nuclear Club)으로 알려진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핵무기 개발 순서)은 핵무기 확보가 용인된 상태다. 숫자 3은 표현을 선택하기가 매우 어려운데 어쨌든 NPT 체제하에서 ‘불법적’ 핵무기 보유 국가들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이들 국가다. 마지막으로 숫자 1은 국제사회가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인 핵무기 보유 국가로 알려진 북한이다.
그런데 3과 1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애초에 NPT에 가입한 적이 없기에 핵무기 관련한 국제적 규범을 어겼다고 얘기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은 1985년 NPT 회원국이 되었고 관련 룰을 지키겠다고 서명했기 때문에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 보유에 성공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미국은 현지시간으로 지난 22일 B-2 스텔스 폭격기 7대를 동원해서 이란의 핵시설 폭격을 감행했다. 언론을 통해 상세하게 보도된 바와 같이 B-2 폭격기는 ‘벙커버스터 GBU-57’ 폭탄을 ‘포도우 나탄즈 에스파한’이라는 이란의 핵시설 3곳에 집중 투하했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미국만이 보유한 스텔스 기능 폭격기로서 다른 국가를 압도하는 미국 군사력의 상징이다. 현재 총 18대의 B-2 폭격기가 운용 중에 있으니 그 중 약 40%가 대 이란작전에 투입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만 전술 역시 대단했다. 지난 19일 이란을 향해 핵 합의를 위한 2주의 시한을 제시한 점을 고려하면 불과 36시간만에 이란 공습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겉으로는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듯했지만, 이미 군사 작전 전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북한핵과 이란핵은 완성도 달라
국내 많은 전문가들이 한반도 문제는 국제안보와 깊게 연동되어 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주장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어떤 맥락과 조건에서 연결점이 발생하는지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분석 작업이다. 또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이란 폭격으로 북한이 내심 놀랐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북한이 뜨끔했을 수는 있지만 지금의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접근법을 한반도에 고려하는 일은 생각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란핵과 북한핵의 완성도가 다르다. 더욱이 꾸준히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컨택해 온 이란의 경우 이를 토대로 미국이 상당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었던 반면 북한은 IAEA와의 단절을 포함해 국제사회와의 소통을 의도적으로 차단한 지 오래되었으니 미국의 정보력이 대이란 공습을 북한에 적용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모사드 요원들이 이란 내부를 활개치며 다녔던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는 1500km가 넘는 지리적 거리가 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엄청한 규모의 의도하지 않은 인질이 있다. ‘인질’이라는 표현에 독자들의 불필요한 오해가 없기를 바라며 한반도 자체가 워낙 좁은 작전 지역이고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엄청난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남북한의 대치는 미국의 전략적 옵션에 큰 제약인 점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란은 다른 아랍 국가들과 달리 페르시아 문명권에 속해 있지만 북한은 국가 정체성에서 독자성이 돋보인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외교 안보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라는 매우 든든한 우산권 안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여가 분명해 보이는 대북한 군사 작전을 트럼프 행정부가 감행할 리 없는 이유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숫자 1로 다시 돌아가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북한을 가리켜 핵국가(Nuclear Power)라고 지칭했음은 물론, 동시에 지금까지의 대북한 비핵화 정책에 실효성이 없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핵보유 국가를 통상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s States)라고 표현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두 가지 표현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고려하면서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있는 그대로 북한을 핵무기 보유 국가로 지칭했을 것이다. 지금은 언론에서 잠시 사라졌지만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입장에 주목하면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스몰딜(small deal)’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있다. ‘스몰딜’은 북미 간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small)의 합의를 계기로 대북한 관여정책을 본격 전개하자는, 일종의 변형된 단계적 비핵화 정책이다.
이 대통령의 6.25 메시지에 주목하는 이유
그저께인 6월 25일은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이었다.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념할 의도는 없었겠지만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재명 대통령으로서는 관련한 메시지를 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필자의 해석으로는 두 가지 내용이었다. 하나는 “평화는 경제이자 생존이다”라는 메시지였고, 또 다른 하나는 “가장 강력한 안보는 평화구축이다”라는 메시지였다. ‘평화가 경제다’는 지난 문재인정부의 메시지였기에 이재명정부는 ‘경제와 생존’을 결합시킨 새로은 버전을 발신했고, 경제와 생존은 한국은 물론 북한 역시 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이 있다고 판단된다. ‘강력한 안보는 평화구축’이라는 메시지는 3중 구조이다. 강력한 안보를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우리 국민을 안심시켰고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구축이 필요하다고 북한과 미국을 향해 의지를 밝힌 것이다.
관련하여 2018년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북미 공동 선언문’의 1항과 2항을 생각해 보면 평화구축이 가지는 복합적 메시지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당시 1항은 한반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겠다는 모두의 약속을, 2항은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국제안보가 한반도와 연관된 사례는 오래전 이란사태를 통해 흥미롭게 확인된다. 1979년 당시 이란 팔레비왕조가 붕괴하고, 새로운 지도자 호메이니의 혁명이 성공을 거뒀을 때, 수도 테헤란에 있던 미 대사관이 이란 젊은이와 시민에 의해 점령당했다.
이란 국민을 저버린 팔레비 왕조를 비호 한다는 비난이 당시 미국 카터행정부에 쏟아졌고, 취임 이후 민주주의와 인권외교를 강조했던 카터 대통령이 체면을 구긴 건 자명했다. 이후 인권외교에 대한 카터의 집착은 더욱 강해졌고, 한국의 박정희정권은 카터에게 손쉬운 타깃이었다.
박정희-카터 사이의 불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미군 철수를 포함해 미국으로 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박정희의 암살로 이어졌다는 가설이 호사가(好事家)들의 해석이었다. 이란혁명이 박정희의 암살로 이어졌다는 건 과다한 시나리오지만 박정희정권 몰락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변수 중의 하나로서는 충분하다고 본다.
트럼프 주도' 평화 모멘텀' 활용할 수도
이란 핵시설의 완전한 파괴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백악관, 이란정부, 미 정보국, 미국 언론 등 판단의 주체에 따라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당분간 로키(low-key)로 나가면서 군사행동을 자제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평화국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 모멘텀은 한반도로 이어져야 한다. ‘스몰딜’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면, 북한 변화와 한반도 통일의 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