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과학기술 발전 위한 공간적 투자가 절실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권은 일단락이 됐다. 새 정부는 파면된 대통령이 일갈했던 연구비 ‘카르텔’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낱낱이 밝힐 뿐 아니라 연구비 정상화도 단기간 내 이루어낼 것이라 믿는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지난 25년 필자가 교수로서 연구자로서 겪어 본 연구비 정책은 성장세 일변이었다. 운 좋고 실력 좋은 과학자라면 그의 연구 일생에서 지원받는 연구비가 100배 이상 커지기도 했다. 교수 1인당 연구비가 가장 많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우 매년 5억 원 이상을 한 연구자가 받는다.
비유하자면 30년 전 우리의 과학기술 현실은 못먹어 빼빼 마른 사람 꼴이었다. 그 동안 맛있는 음식을 섭취한 덕분에 이제 체격도 체력도 좋아졌다. 이젠 음식만 더 주입한다고 체격이 더 커지지 않는다. 체격 자체가 아니라 이 사람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잘 살피기 시작해야 한다. 궁극적 목적은 건강이지 체격 자체는 아니다.
일단 대학교에 있는 이공계 연구자들에게 지원되는 연구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대학의 역할은 모순적이라고 할 만큼 이중적이다. 학부생들에게는 교양과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교수들이 대학원에서는 연구를 주도하는 연구자로 돌변한다. 그런 대학 중 3/4이상이 사립 기관이란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교수 겸 연구자 충원도 사립대학교 위주로 이루어진다.
사립대학의 재정은 한마디로 불충분하고 그 여파는 부족한 교원 숫자로 드러난다. 1년에 다섯 과목을 강의하는 이공계 교수는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지만 대부분 사립대학교 교수는 몇 십년 째 그런 강의에 행정 업무까지 떠안은 여건 속에서 어떻게든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 이미 연구 선진국이 된 중국의 일류대학과 비슷한 여건을 만들려면 1년 강의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야 하고 강의인력은 2 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사립대학교가 자체적으로 강의 겸 연구인력을 대대적으로 보충하거나 그 충원된 인력을 수용할 공간을 확보할 여력은 없다. 서울 시내에만도 수십개의 사립대가 있지만 어느 곳 하나 부지를 확장할 여지는 없다. 공간적 재정적 제약은 우리의 집단적 연구능력이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 부근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사립대학 몇 군데를 골라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구비 받는 쪽 구조 최적화가 현안
결국 해답은 정부의 지원과 관리를 동시에 받는 국립대학이나 과학기술중심대학에 있다. 대전에 위치한 KAIST는 대중에게 알려진 것 이상으로 이미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이 됐다. 교수연구자들의 강의량도 해외 일류대학 수준이고 학생 수준도 그만하면 세계적으로 딸리지 않는다. 왜 이 좋은 일류 교육연구 기관을 초일류로 만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대전에 있으니 부지를 늘리고 건물을 세워 교연구자를 지금보다 훨씬 많이 채용하는 데도 큰 제약이 따르지 않는다. 늘어난 교수연구자에게 필요한 연구비와 우수 학생 연구인력은 KAIST가 이미 누리고 있는 명성을 등에 업으면 어렵지 않게 따라올 것이다.
이공계 분야에서 KAIST와 비견할 만한 곳은 서울대학교다. 서울대 자연대와 공대의 연구실의 실상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과포화 상태라는 건 연구실 홈페이지만 쓱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연구실에 입학한 새내기가 선배 도움을 받아 알아서 논문 쓰고 졸업하는 경우도 흔하다.
서울대 대학원의 인구 과밀은 공간적 확장성의 어려움과도 통한다. 1970~1980년대의 과밀학급 문제를 학교를 신설해 해결했듯 대학원 과밀현상은 연구를 잘 할 교수연구자를 계속 채용하고 연구실 숫자를 늘리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 시내 어디서 그만한 땅을 구할 것인가? 서울 외곽도 마땅치 않다. 세종시 부근에 서울대 분신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답이다.
과학기술 정책, 연구비 정책하면 연구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 이제는 연구비를 주는 방식을 최적화하는 문제 이상으로 받는 쪽의 구조를 최적화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해졌다. 더 이상 연구비만의 문제가 아니란 뜻이다.
첨단 연구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대학교 연구기관의 구조적인 문제 중 일등은 공간문제다.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일단 공간이 확보되고 교육연구자의 숫자가 늘어나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강의와 행정 업무가 대폭 줄어야만 보장될 수 있다. 집중하지 못하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연구비를 쥐어준들 좋은 연구 성과로 환원되기 어렵다.
‘서울대 대학원 10개’가 더 실효적
어떻게 편파적으로 특정 대학 한 두 곳만 콕 집어서 지원할 수 있는가? 반론과 우려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과기원과 서울대는 일개 대학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자산이며 K-과학을 상징하는 기관이 됐다. 학부 교육과 대학원 연구라는 두 기능을 철저히 분리해서 따져야 한다.
입시 피라미드의 최정점에 있는 두 대학교에 더 특혜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관점은 유효하지만 오직 학부 입학생만 바라본 시각이다.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주장 역시 학부생 입시와 관련된 것이다. 현실적 필요성도 당위성도 있는 주장은 오히려 ‘서울대 대학원 10개 만들기’다. 연구기관으로서의 서울대와 과기원은 아직도 투자가 한참 부족하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공간적 투자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