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소환 앞두고 혐의 다지는 특검
3일 김주현 전 민정수석 출석조사
한덕수 등 국무위원도 줄줄이 소환
국무회의 위법성·외환 혐의 규명 주력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2차 소환을 앞두고 수사에 고삐를 죄고 있다. 비상계엄 국무회의의 위법성과 북한 무인기 침투 의혹 등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며 윤 전 대통령 혐의 다지기에 나선 모습이다.
특검팀은 3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을 소환했다. 특검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고등검찰청에 출석한 김 전 수석은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사실을 향했다.
김 전 수석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다음날 대통령실 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등과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김 전 수석은 또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에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한다’는 점을 알려 비상계엄 선포 후 새로운 계엄 선포문을 만들도록 했다는 의심도 받는다. 실제 강 전 실장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부서가 담긴 계엄 선포문을 다시 만들었다가 폐기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검은 김 전 수석을 상대로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과정, 사후 선포문이 작성됐다가 폐기된 경위, 대통령 안가 회동 등에 대해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성훈 차장도 소환 … 체포 저지 등 조사 = 특검은 같은 날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도 소환했다. 윤 전 대통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체포영장 집행방해와 비화폰 기록 삭제 지시 혐의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특검은 전날에도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등 비상계엄 국무회의 관련 국무위원들을 잇달아 불러 조사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14시간 가까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한 전 총리는 불법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가담 내지 방조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한 전 총리는 그동안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전 윤 전 대통령을 설득해 계엄 선포를 막으려했다고 주장해왔다.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쯤 들어오라는 윤 전 대통령 전화를 받고 대통령실로 들어갔다가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알게 됐고, 사회·경제적 악영향을 우려해 반대했다는 것이다. 의지가 확고한 윤 전 대통령을 만류하기 위해 국무위원들을 더 모았으나 계엄 선포를 막지는 못했다는 게 한 전 총리의 주장이다.
하지만 비상계엄과 관련해 부서(서명)한 사실이 없다던 한 전 총리의 진술과 달리 계엄 선포 이후 작성된 계엄 선포문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한 전 총리가 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건은 한 전 총리가 ‘사후 문건을 만들었다는 게 알려지면 논란이 될 수 있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요청해 폐기됐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또 계엄 문건을 사전에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 화면에는 그가 계엄 문건을 검토하는 장면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한 전 총리에게는 국무회의를 통해 비상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방조한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내란 동조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조사실에 입장한 한 전 총리는 조사 후 귀가 길에도 침묵했다.
특검은 안 장관과 유 장관을 상대로는 당시 국무회의 소집 상황 등에 대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장관은 계엄 전 열린 국무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만 참석했다.
특검은 이날 김정환 전 대통령실 수행실장도 불러 조사했다. 김 전 실장은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위원들을 추가로 부르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강 전 부속실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비상계엄 당시 국무위원들이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가담 또는 방조했는지, 윤 전 대통령에 의해 심의·의결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인지는 특검 수사를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의 압박으로 제대로 심의·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국무위원들의 진술은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북한 무인기 의혹, 연구원 조사 =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외환 혐의를 입증하는 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북한에 무인기를 보내는 등 도발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은 일찍부터 제기돼왔지만 검찰과 경찰 수사에서는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특검은 최근 ‘북한 무인기 투입이 윤 전 대통령의 지시라고 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군 현역 장교의 녹취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취에는 “(평양에 무인기를 날린 게) 김용대 드론작전사령관으로부터 V지시라고 들었다”, “북한이 무인기에 대한 적대적 발표를 한 것을 보고 V가 좋아했다고 들었다” 등의 내용이 담겼는데 언론을 통해 일부가 공개되기도 했다.
특검은 방위사업청 산하 국방과학연구소 항공기술연구원 연구원 등을 소환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앞서 국방과학연구소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북한 당국이 공개한 한국 무인기와 군 드론작전사령부가 보유한 무인기가 외형적으로 유사하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특검이 조만간 무인기 비행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드론작전사령부 압수수색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특검은 오는 5일 윤 전 대통령이 2차 조사에 출석하면 비상계엄 국무회의와 외환 혐의 등과 관련한 내용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의 진술을 검토하고 여전히 미진하다고 판단될 경우 추가 소환을 준비하겠지만 혐의를 뒷받침할 사실관계가 어느 정도 규명됐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