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탁 칼럼

대통령의 제비뽑기 언론관

2025-07-08 13:00:04 게재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한 달을 맞아 가진 기자회견에서 질문 기자를 제비뽑기로 정하는 이색적 이벤트를 선보였다. 기자들 명함을 민생경제 정치외교 사회문화 등 주제별로 구분된 상자에 넣어두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무작위로 명함을 뽑아 해당 기자를 질문자로 정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던 독창적 발상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행사의 성격상 내용 못지않게 진행 방식을 놓고도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법이다. 기자는 본디 질문하는 사람이고, 질문 내용은 종종 예측하기 어렵다. 국내외에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대통령이 예상 밖의 질문에 노출되어 쩔쩔 매는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대통령 참모들은 질문 기자나 질문 주제가 미리 정해져 안정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기자들 사이 사전 조율이 있을 경우 ‘짜고 치는 고스톱’, ‘약속대련’ 따위의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제비뽑기는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다 답변할 수 있는 자신감과 역량을 갖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국내외에 심어줬다. 추첨 방식을 두고도 새롭다, 흥미롭다, 참신하다와 같은 긍정적 반응이 많다. 이 정도면 이재명정부 초기에 보여준 홍보 이벤트가 매우 성공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이재명정부 초기 홍보 이벤트로는 성공적

하지만 제비뽑기 회견 방식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회견에는 국내 언론 119곳, 외신 28곳이 참여해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통신사 2곳을 포함해 모두 15명이 질문 기회를 얻었다. 소위 레거시 미디어라 불리는 전통 언론, 즉 국내 대형 신문사 10개와 지상파 방송 3사 기자는 뽑기 운이 따르지 않아 2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 내내 마이크를 잡을 수 없었다.

전통 언론에 질문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기자회견은 이번이 처음 아닐까 싶다. 대통령실이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겠지만 공교롭게도 이재명정부와 전통 언론의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장면처럼 느껴져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다.

정부와 언론의 순탄(順坦)한 관계라고 해서 정언(政言) 유착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언론은 본연의 권력 감시 기능에 충실하고, 정부는 언론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는 건강한 관계를 ‘순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둘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불가근 불가원의 긴장 협력 관계가 바람직하다고 교과서에 나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동안 전통 언론에 대해 비판적이고 적대적이며, 나아가 불신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는 2017년 성남시장 시절, 한 종편 방송이 본인 가족 관련해 왜곡 보도를 한다는 이유로 해당 매체를 “독극물 조작언론”이라며 “반드시 폐간 시키겠다”는 격한 감정을 SNS에 드러낸 적이 있다. 이듬해 6월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던 날 저녁엔 한 지상파 방송과 당선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에게 마뜩치 않은 질문을 한다는 이유로 인터뷰 도중 일방적으로 생방송을 끊어버린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재판 출석을 위해 법원에 나오면서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여러분은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를 받아 열심히 왜곡 조작을 하고 있지 않나”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레거시 미디어 대신 뉴미디어를 ‘목숨줄’처럼 여긴다. 지난 대선 때 유튜브 이재명TV 달려라이브에 출연한 그는 “제가 SNS를 통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 없었으면 살아남았겠느냐. 저 언론들, 저 왜곡, 가짜 정보에, 저 옛날에 다 사라졌을 거다. 가루가 됐을 거다”라고 말했다. 실제 선거 캠페인을 하면서도 유튜브와 동시 방송하는 라디오 한 곳을 빼고는 레거시 미디어와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진보 성향의 유튜브 2곳에만 출연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SNS를 중시하고 레거시 미디어를 멀리하면 어떻게 될까. 국정 메시지가 언론사 데스크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국민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어 좋은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레거시 미디어의 신뢰도나 영향력이 예전보다 크게 떨어진 것도 사실 아닌가.

언론과 SNS는 본질이 다른 미디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론과 SNS는 본질이 다른 미디어라는 점이다. 언론이 아닌 SNS는 당연하게도 저널리즘 기능이 없다. 저널리즘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보도의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 원칙이 SNS에선 필요 없다. 메신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극단적 편향성을 나타내면 낼수록 ‘좋아요’와 ‘구독자수’는 늘어난다. 그들은 동호인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SNS가 아니라 언론의 몫이다. 전통 언론을 레거시 미디어라 부르는 이유는 'legacy'라는 말 속에 ‘여전히 중요한 과거의 유산’이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제비뽑기로, 다음에는 또 어떤 방식으로 배제될지 모르지만 정권이 성공하려면 레거시 미디어와의 순탄한 관계가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신한대 특임교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