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시 ‘2시간 일하면 20분 휴식’ 의무화

2025-07-14 13:00:03 게재

규개위, 고용부 재심사 요청에 ‘산업안전보건기준’ 심사 통과 … 각국 폭염 노동자 안전 고심

이번 주부터 작업장이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이 의무화된다.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산안규칙)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고용부는 1월 22일부터 3월 4일까지 여름철 폭염 속 발생할 수 있는 노동자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주의 보건조치 의무를 상세하게 담은 산안규칙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는 폭염·한파 관련 내용이 들어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 시행일인 6월 1일에 맞춰 시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규개위는 주된 작업장소의 체감온도가 33도(기상청 폭염특보 기준)라면 매 2시간 이내 20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해야 한다고 명시한 조항이 중소·영세사업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두차례 재검토를 요구했다

해당 조항은 20분 휴식 의무화를 어길 경우 산안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조치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적용된다.

고용부는 최근 폭염 상황을 고려해 규개위에 재심사를 요청했다. 규개위가 같은 안건을 세차례 심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기존 규칙이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적절한 휴식 부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정도로 규정했던 것에 비하면 개정 규칙은 휴식 부여의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의무화했다.

◆미국, 연방차원 온열질환 예방지침 마련 중 = 폭염 때 노동자 안전대책 마련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미국은 지난해 연방정부 차원의 ‘실내외 작업장에서의 온열질환 예방 지침’을 마련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주별로는 미네소타 캘리포니아 오리건 콜로라도 워싱턴 등이 자체 폭염·고열 관련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연방 차원의 특화된 규제는 없었다.

하지만 작업장 내 온열질환이나 이로 인한 사망자가 늘고 있는데다가 주별 규제 편차로 노동자 보호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자 연방 차원의 지침을 만들게 됐다.

추진 중인 지침은 열지수 기준에 따라 여러 조처를 하도록 했다. 열지수가 화씨 80도(섭씨 약 27도) 이상인 ‘초기 열 트리거’ 때는 모든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마실 물과 휴식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휴식공간은 실외 작업장의 경우 인공 또는 자연적인 그늘을 갖추고 에어컨이 설치돼야 하며 실내 작업장에는 에어컨과 제습기가 있어야 한다.

열지수가 화씨 90도(섭씨 약 32도)를 넘는 ‘고열 트리거’ 때는 사용자 의무조치가 한층 강화된다. 우선 2시간마다 최소 15분의 유급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휴식시간에는 무급 식사시간도 포함될 수 있지만 개인보호장비를 벗거나 다시 착용하는 시간, 휴게구역으로 가는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열 트리거 이상의 상황이 발생하면 사용자는 노동자의 온열질환 징후를 관찰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작업장 내 노동자들이 서로를 모니터링하는 ‘버디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감독자 또는 열안전 코디네이터를 둬 노동자들의 온열질환 징후를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작업장에서 혼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휴대용 무전기, 전화 등 효과적인 양방향 통신수단으로 최소 2시간마다 연락을 취해야 한다.

또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수분 섭취의 중요성, 필요시 휴식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온열질환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하는 방법과 절차, 휴게 구역과 음수대 위치 등을 알려야 하고 화씨 120도(섭씨 약 49도) 이상인 실내 작업장엔 경고 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은 공청회를 지난 7일 마치고 추가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세부 사항에 대한 이견이 있긴 하지만 미국 산업계에서도 온열질환 예방지침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늦어도 내년에 이번 지침이 제정·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2인1조 상태 확인·수분 제공 의무화 = 일본은 우리나라 산안법의 시행규칙에 해당하는 ‘노동안전위생규칙’을 최근 개정해 지난달부터 작업장 열사병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우선 노동안전위생규칙에 ‘열사병 발생 우려가 있는 작업’을 규율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열사병 우려가 있는 작업’은 습구흑구온도(WBGT)가 28도 이상이거나 기온이 31도 이상인 장소에서 연속해서 1시간 이상 또는 하루에 4시간 초과 근무가 예상되는 경우로 규정했다.

WBGT는 기온 습도 바람 등 인체 열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열 스트레스 지수를 나타내는 지표다.

열사병 우려 작업을 할 경우 노동자가 자각 증상을 느끼거나 동료에게 의심 징후를 발견했을 때 즉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예컨대 관리감독자가 수시로 순시하거나 노동자가 2인 1조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버디제’를 운영해야 한다. 열사병 환자가 발생하면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당사자를 즉시 시원한 곳으로 옮긴 뒤 현장 실정에 맞게 체온을 떨어뜨리고서 작업장 의무실 혹은 지정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작업 강도에 따라 예방대책을 시행하는 WBGT 기준값도 다르게 정했다. 타자 치기(타이핑) 같은 낮은 신진대사율을 요구하는 경우 WBGT 30도, 못박기 미장 과일수확 등 중간 수준의 작업은 WBGT 28도, 삽질 톱질 망치질 등 높은 수준의 작업은 WBGT 26도가 기준이 된다. 작업별로 WBGT가 기준 이상이면 사용자는 냉방 차열막 환풍기 등으로 WBGT를 낮추고, 노동자에게 정기적으로 수분과 염분을 제공해야 하며, 휴게장소에 체온계와 체중계를 비치해 노동자가 자신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용자가 이런 의무 조치를 하지 않았을 경우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약 47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 “35도 넘으면 작업 부적합” = 독일은 사업장 안전보건에 관한 시행령에 따른 기술 규정에서 실내 작업장 온도가 26도 이상이면 권고조치, 30도 이상이면 의무조치, 35도 이상이면 근무중지 등으로 온도에 따른 단계별 조치를 명시하고 있다.

온도가 26도 이상일 경우 △이른 아침시간 환기 △유연근무시간 제도를 활용한 작업시간 조정 △복장 규정 완화 △추가적인 열 식힘 시간 설정 △선풍기·천장팬 등 사용 등 8개 조치가 권장된다.

온도가 30도 이상이면 이런 조치가 의무화되고 35도를 넘어서면 작업하기에 부적합한 공간으로 간주된다.

단 에어 샤워와 물커튼 등 특단의 기술적 조처를 하거나 열 보호복 같은 전신 단열 개인보호장비를 지급하면 작업할 수 있다.

독일은 실외 작업장을 대상으로 한 기술 규정도 조만간 공표할 예정이다.

한남진 기자 연합뉴스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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