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업의 가상자산 재무전략, 위험인가 기회인가

2025-07-15 13:00:01 게재

최근 가상자산을 기업 재무 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 ‘디지털자산 기본법’ 2단계 입법을 통해 기업이 가상자산을 일정 요건 하에 보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 중이다.

반면 미국은 이미 마이크로스트레티지, 테슬라, 게임스톱 등 다수의 기업이 비트코인을 자산으로 편입해 운용하고 있으며, 연방정부 차원에서는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 개념을 공식화하며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나아가 미국의 주택금융 규제당국(FHFA)은 비트코인을 주택구입 시 담보자산으로 인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어, 가상자산의 제도권 내 위상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미국에서는 조만간 ‘지니어스법(GENIUS Act)’가 하원을 통과할 전망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연방 차원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요건, 적립금 보유 규제, 투자자 보호 조항 등이 법제화된다. 법이 통과되는 그 순간,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투자자산을 넘어서 미국의 디지털 금융 인프라로 흡수된다. 비트코인은 7월 들어 역대 최고가를 경신하며 12만달러 선을 돌파했다. 이쯤 되면 단순한 우연이라고 넘길 수 없다.

미 하원 지니어스법안 통과 예정

기업들도 기민하게 움직인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회사 자체를 ‘비트코인 보유 플랫폼’으로 전환했고, 게임스톱은 파산 위기에서 비트코인 기반 회계 시스템을 실험 중이다. 이들은 단순 투자가 아니라,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 혹은 ‘글로벌 가치 저장소’로 받아들인다. 미국 연준 의장의 금리 카드에 따라 움직이던 과거와 달리, 기업들은 연준 바깥의 자산 수단을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현장에서는 ‘내부 가이드라인 수립’이나 ‘공시 강화’ 같은 문구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문제는 속도와 판단이다. 지금 기업이 할 일은 흐름에 합류할 준비에 대한 자가진단이다. 한 IT 중견기업이 현재 보유한 외화 예치금 중 5%를 전략적 디지털 자산으로 전환하려 한다면, 어디에 보관할지, 누가 승인할지,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 모든 것에 대해 CEO가 답을 내릴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위험도 상존한다. 회계기준상 비트코인은 무형자산으로 분류되고, 시가가 하락하면 손상차손을 반영해야 한다. 이익은 실현 전까진 반영되지 않고, 손실은 즉시 기록된다. 매우 불리한 구조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회계 규칙이 바뀌는 순간을 선점하면, 가장 먼저 레버리지를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회계감독위원회(FASB)는 비트코인의 공정가치 평가 적용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제도는 따라오는 중이다.

한국 정부는 제2단계 입법을 통해 가상자산 산업의 제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율, 거래소 인가제, 디지털자산위원회 설립 등은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조치다. 하지만 제도 완성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과도기에 필요한 건 ‘위험 통제’가 아니라 ‘전략적 실험’이다. 실패해도 감점 없는 문제에서 먼저 손드는 사람이 주목받는다. 지금이 그 시간이다.

과도기에 필요한 것은 ‘전략적 실험’

가상자산은 기업 재무의 위기도, 기회도 될 수 있다. 핵심은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하느냐다. 혁신은 늘 낯설고 불편한 옷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잘 맞는 옷은 입어봐야 안다. 준비된 기업만이 그 옷을 먼저 입을 수 있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