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북관계 ‘복원’ 전환적 관점이 필요하다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의 ‘복원’, ‘회복’, ‘정상화’ 목소리가 높다. 복원, 회복, 정상화란 과거의 어떤 상태, 경험의 ‘정상성’을 염두에 둔 용어다. 비정상인 현재를 그때와 같은 상태, 수준으로 복원, 회복, 정상화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화와 교류·협력이 활성화됐던 시기일까, 아니면 판문점과 평양에 이뤄진 정상회담, 그리고 ‘판문점 선언’이 정상일까?
사실 남북관계에서 ‘정상성’은 모호하다. 탈냉전 직후 북한은 경제난 속에 선군정치를 표방하며 체제를 비상관리했다. 남북관계의 유화적 대응을 통해 대내외 어려움을 관리하려 했다. 이 시기 7~8년 동안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화와 협력이 이뤄졌다. 그러나 분단사 전체로 보면 이 시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분단사의 대부분은 상호 도발과 긴장, 비난과 대립, 정략적 대화 등 남북관계를 수단으로 삼는 ‘적대적 공생’이 하나의 정상성이었다. 문재인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북미로 가는 교두보로 남북을 수단적으로 활용했다. 그것을 빼면 대화는 단절적이었고 합의 이행은 지지부진했고 지속성을 갖지 못했다.
'유화적 국면' 아닌 '새로운 공존'으로 가야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대화나 교류협력의 양적 증가, 정상회담과 같은 대형 이벤트가 이뤄지는 ‘유화적 국면’과 관계의 형식과 내용에서 ‘질적 변화’가 나타나는 것 사이의 구분이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거 ‘유화적 국면’ 재현이 아니라, 적대의 관계 형식과 내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새로운 ‘공존’의 정상성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정부들은 비핵화나 남북관계 정상화를 목표로 둔 탓에 임기 내내 북한 태도에 일희일비하며 답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정책 취급을 받았다. 정책 아이템 역시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정상화, 한미동맹과 강군육성이라는 소재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몇 가지 소재를 목표로 삼는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아니라 평화적 공존을 위한 새로운 관계의 형식과 내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비정상으로 보고 이전 정부가 망쳐놓았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반만 맞는 얘기다. 윤석열정부가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만든 건 사실이지만, 이미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라는 전략적 기조를 빌드업한 것은 2019년으로 거슬러 간다.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목표인 핵보유국의 전략적 지위 확보를 가장 반대하는 것은 남한이다. 남한을 배제하고 차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판단은 북한식 실용주의에 해당한다.
따라서 목표는 ‘복원’이나 이전 정부의 비정상성만을 탓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그런 점에서 9.19 군사합의를 복원 공약도 신중하게 검토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복원’은 ‘전면적 효력 정지’ 상태를 해제한다는 것인데,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합의’는 일방의 해제만으로 복원이 어렵다. 북한 역시 ‘파기’ 결정을 번복하고 양측이 다시 합의 이행을 재약속해야 한다. 9.19 군사합의의 정식 명칭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이다. 판문점 선언의 부속합의서이다. 판문점 선언은 통일과 민족에 기반한 관계 개선 이행이 핵심이다. 동족관계와 통일을 부정하는 ‘적대적 두 국가’를 전략적 기조로 삼고 있는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이행한다는 것은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철회한다는 얘기가 된다. 북한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매우 낮다. 따라서 먼저 해제(복원) 선언을 하기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차원에서 당국간 대화를 제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위협 줄이는 종합적인 접근이 핵심
국익은 무엇이고 실용적인 것은 무엇인가? 한반도에 사는 모든 구성원들이 안전해지는 것이 국익이고 실질적인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 실용이다. 한반도의 포괄적 안전, 남북한 공존의 안전, 민족공동체의 안전을 중심에 놓는 접근이 필요하다.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한 남북한 협력안보의 구상이 목표가 돼야 한다.
윤석열정부 시기 한미 연합훈련 횟수는 매년 역대급을 훌쩍 갱신해 왔다. 올해 상반기도 마찬가지다. 위협 감소의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외치는 것은 모순을 넘어 본질의 회피다. 상호 위협을 줄이는 선제적이고 점진적인 접근, 종합적인 ‘협력적 전환 프로그램’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