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미국 발 관세전쟁, ‘쿠오바디스’

2025-07-18 13:00:36 게재

‘로스 페로(Ross Perot)’를 기억하는 독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1992년 미국 대선 일반투표에서 18.8%를 기록해 득표수 기준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제3의 후보로 기록된 인물이다. 물론 미국 선거제의 특징으로 인해 선거인단은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대중 사이에서 페로의 인기는 상당했는데 인기의 원동력은 당시 미국정부의 화두였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철저히 반대한 데 있다. 그는 미국의 제조업과 일자리는 멕시코로 빨려들어 갈 것이 불을 보듯 하다고 주장했다. 선거가 한창이던 1992년 8월에 체결된 NAFTA는 다음 해 말 미국 의회의 인준을 거쳐 1994년 1월에 정식 발효되었다. 역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을 NAFTA의 의회 인준이라는 험한 고비를 넘긴 주인공으로 기억하고 있다.

관세전쟁 1라운드 승기잡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멕시코를 상대로 30%의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최종 발표했다. 예고한대로 서한을 통해서였고 알려진 바와 같이 멕시코의 경우 합성마약 펜타닐이 미국으로 반입되는 문제를 거론하면서 해결을 위한 멕시코정부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예의(例義) 논리인 미국의 국가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주장이다.

동시에 또 다른 트랙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대로 미국·캐나다·멕시코협정(USMCA)의 재검토를 앞당기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USMCA는 NAFTA가 미국에게 불리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따라 2018년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무역협정이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USMCA가 미국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하면서 더욱 미국 친화적인 무역 협정을 만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로스 페로가 완벽하게 부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아메리카 퍼스트 무역정책’이라는 메모랜덤(법적 구속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각서)을 제시했다. 관련 기관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전세계 각국을 향해 무수히 많은 관세 인상 요구를 내놨다. 또한 수정과 번복을 거듭하기도 했다.

1913년 처음 조성된 이후 각종 파티와 환영의 상징이었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패널을 들고 국가별 상호관계 수치가 적힌 내용을 발표한 시점이 지난 4월 2일이었다. 여러 국가들과 다양한 유예기간 협상을 가졌는데 현재는 대부분 8월 1일이라는 ‘유예기간 데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대개의 국가들이 내부적으로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겉으로는 자유무역 질서의 보호라는 원칙론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재보복 위협에 따라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관세폭탄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국과 캐나다 정도가 ‘맞불정책’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고 있지만, 그마저도 캐나다는 최근 들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듯한 모양새다. 미국 발(發) 관세전쟁의 1라운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은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중국 유럽 캐나다 일본 등은 생각이 복잡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엇보다도 미국정부의 관세인상에 따른 비용이 미국 소비자뿐 아니라 전세계에 전가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비용 증가의 부담을 전세계에 걸친 ‘분산 효과’로 전환시켜 미국 시장에서 받게 될 충격을 줄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연합(EU)과 캐나다처럼 국제무역구조에 밀착된 경제들은 미국과의 갈등 고조에 따른 비용 및 물가상승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고, 결과적으로 자국이 확보한 글로벌 공급망에 미칠 피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세계가 인정하는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은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이용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민으로부터의 비판에는 매우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5월 1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를 겨냥해서 “가격인상을 관세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분명하게 경고한 바 있다. 관세인상으로 인한 미국 내 소비자의 부담을 관리하는 것이 관세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관세전쟁 미 국내 정치에도 불 붙여

관세전쟁은 국내 정치에도 불을 붙여 예기치 못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중저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의 마찰은 당연히 예견된 일이었다. 고용과 통화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사이의 균형이 최대 관심사인 파월 의장 입장에서 다소 우와좌왕 하는 관세정책은 당연히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처럼 정부가 수립한 중앙은행은 아니지만 정부와의 경제정책 협조가 필수적인 파월 의장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일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는 한발, 아니 세발쯤 더 나갔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머스크는 최근 정보효율부 장관에서 물러나 트럼프행정부의 소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를 강하게 비난했다. 정부효율부의 수장으로서 예산 절감에 앞장섰던 머스크의 입장에서 이 법안이 부유층 세금 감면 조치를 연장하고 국방과 국경 이민단속 지출을 늘리는 내용으로, 향후 10년간 재정적자가 3조4000억달러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추산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아메리카당’이라는 신당 창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는데 미국에서 제3 정당의 원내 진출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일과 같아서 현 시점에서 창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벌이는 관세협상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 외교적으로는 흔치 않은 ‘버릇이 없다(very spoiled)’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사용했고, 일본이 강력히 희망한 25% 자동차 관세의 조정에 응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선거를 앞둔 일본을 향해 표와 직결되는 농산품 수입 확대를 요구해 한때 아시아의 영국이라고 불리던 미일관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민감한 관세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이시바 총리 역시 평소의 의미지와는 달리 미국을 향해 절대로 관세에 쉽게 타협할 생각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국민부담 해소 위해 가용카드 고려해야

결국 중요한 것은 한국의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7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이 14개국에 발송한 상호관세율 통보 서한(한국은 25%)을 받았고, 8월 1일까지 협상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다. 여한구 통상본부장이 지난달 22~27일 미국을 방문해 첫 고위급 통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위성락 안보실장이 7월 7일~9일 미국을 방문해 루비오 국무장관 등 카운트 파트를 만나서 다양한 의제를 교환했는데, 안보실의 언론 브리핑에 따르면 “통상·투자·안보” 전반에 걸친 이슈를 논의했다고 직접 밝혔다는 부분이다.

표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필자가 해석하자면 ‘관세협상을 중심으로 통상 문제를 잘 풀기 위해, 한국의 투자 확대 등을 논의하고, 나아가 안보 현안과의 현명한 연계를 통해 함께 노력하자’ 이런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한반도 안보 특수성으로 인해 방위비분담금협정(SMA) 등을 포함한 다양한 연계 전략이 있을 수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 경제 활성화와 국민부담 해소를 위해 모든 가용카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문제의 본질은 한국이 가진 안보 특수성 못지 않게 미국이 가진 ‘글로벌 리더십 특수성’ ‘미중경쟁 특수성’, 혹은 ‘아시아 안정성 특수성’ 같은 변수들도 적극 분석할 필요가 있고, 이제는 그래도 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