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방자치가 만든 희망 ‘아기 울음소리’
대한민국에서 저출생 위기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을 기록하며, OECD 선진국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최근 조심스러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올해 합계출산율이 0.8명대로 회복될 가능성을 전망하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실제로 혼인 건수는 13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월간 1만9000건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망의 실마리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실질적인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바로 인천시다. 인천시는 지난해 출산 증가율 11.6%를 기록하며 전국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전국 출생아 수가 23만8343명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성과다. 이 같은 결과를 이끈 것은 인천시만의 ‘아이 플러스 1억 드림’ 정책 덕분이다. 정책의 핵심은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으로 △임산부에게는 교통비 50만원(1회) △1~7세 아동에게는 연 120만원의 ‘천사지원금’ △8~18세 학생에게는 월 5만~15만원의 ‘아이 꿈수당’을 지급한다.
저출생 위기 전환점 만든 지방정부 정책
대구 남구는 더욱 혁신적인 도전에 나섰다. 전국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인구정책국’을 신설하며, 인구정책 특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무지개 프로젝트’다. 대구 남구에 살면 결혼부터 임신·출산, 보육과 교육, 주거와 일자리까지 7가지를 함께 책임지는 인구정책 종합서비스다. 복지지원 중심의 출산 정책에서 벗어나, 인구의 지속성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접근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방정부의 모범사례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전남 장흥군은 신혼부부를 위해 매달 임대료 1만원의 ‘전남형 만원주택'을 운영하고, 경남 진주시는 청소년 시내버스 100원 요금제로 교육비 부담 완화에 나섰다. 군부대가 몰려 있는 강원도 정선군은 지역 특성을 활용한 정책을 선보였다. 군립병원 산부인과 전문의가 매월 정선군보건소에서 외래진료를 하면서, 군민들이 편리하게 임신과 출산 관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출산율 회복의 훈풍에는 지방정부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일찍이 지방자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세유표(經世遺表)를 통해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 혜안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저출생 정책 역시 지방자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전국 243개 지방정부가 곧 대한민국이다. 중앙 중심의 획일적인 정책보다 각 지역의 지리적, 경제적, 문화적 특성에 맞는 맞춤형 해법이 필요하다.
민선자치 30주년을 맞은 2025년, 우리는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첫발을 내디뎠던 지방자치는 이제 대한민국 혁신의 주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변화는 언제나 지방에서 시작했다. 정부보다 한발 앞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역 특성에 맞는 창의적 해법을 제시하며, 주민 삶의 질을 직접 바꿔온 것이 바로 지방자치의 진정한 가치다.
지역혁신의 플랫폼으로 거듭날 것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서 지방정부는 단순한 행정기관을 넘어 지역혁신의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날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지방발전이 곧 국가발전’이라는 소신 아래 21세기 목민관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지방에서,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꽃피울 것이다.
조재구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대구남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