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성공하는 개헌의 조건

2025-07-22 13:00:01 게재

지난 7월 17일 제헌절.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은 화답하듯 개헌론을 꺼냈다. 우 의장은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헌절 경축식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게 헌법을 정비해야 한다”며 최소 수준의 개헌으로 첫발을 떼자고 제안했다. 이 대통령도 ‘국민중심 개헌’을 내세우며 “이제 국회가 헌법개정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극한호우와 수재, 윤석열 전 대통령 관련 특검수사 등 뒤이은 큰 이슈에 묻혀버렸지만 행정부와 입법부 수장이 직접 개헌론을 언급한 만큼 그 어느 때보다 개헌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우 의장은 이재명정부 내각구성 등 국정운영이 안정화되는 하반기에 국회 헌법개정특위를 출범시켜 관련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내용과 과정 동시에 갖춰져야 가능

사실 현행 헌법의 개정 필요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민주화시대 초입인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이 정보화시대인 지금 국민의 삶을 규정하는 데는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디지털환경, 극한호우와 대형산불이 일상화된 기후위기가 우리 사회의 뉴노멀로 자리잡았다. 현행 헌법에는 없는 ‘디지털기본권’ ‘기후권’ 등에 대한 규정이 현안이 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현행 헌법체제에서 두명의 대통령이 탄핵됐다는 점도 개헌의 필요성을 더한다.

그러면 개헌이 가시권에 들어왔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글쎄요’다. 개헌안에 담길 내용과 개헌의 절차과정 모두 적지 않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어서다.

현재 거론되는 개헌의 주요내용은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조항을 시대에 맞게 수정 △대통령 권한 등 권력구조 문제 정리 △경제환경의 변화 반영 △자치분권 관련 조항 엄밀화 등이다. 대부분의 조항이 개정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각각의 내용에는 각계각층의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친다. 예를 들어 경제조항 관련해서 기업계는 시장주의 확대를, 노동계는 노동권 강화를 주장한다. 기후환경계에서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미래세대의 행복추구권이 담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에 평등권 확대를 동성애 허용으로 해석하는 보수 개신교계와 같은 특정집단의 극단적 의견도 표출된다. 말하자면 헌법의 기본권 조항 자체가 ‘판도라 상자’인 셈이다. 우 의장이 ‘살라미 개헌’을 띄운 것도 개헌을 둘러싼 이해충돌 요소가 크고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개헌의 경로 또한 산 너머 산이다. 개헌은 국회의원 과반의 발의에 2/3 찬성, 국민(유권자) 과반의 찬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여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가졌다지만 국민의힘이 반대하면 불가능한 구조다. 문제는 지금 국민의힘 상황이 개헌과 관련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반대의견이라도 분명하면 협상과 조정을 통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겠지만 현재의 국민의힘이 헌법에 대한 통일된 의견을 만들 수 있을지 미지수다. 어쩌면 윤석열정권이 약속했던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조차 합의를 끌어내기 만만치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 개헌가능성이 조금 높아졌다고 보는 것은 취임 44일 만에 개헌론을 꺼낸 이 대통령의 태도 때문이다. 사실 개헌의 ‘블랙홀 효과’ 때문에 역대 대통령 중 임기 초반부터 개헌에 적극적인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임기 후반 궁지에 몰렸을 때 개헌카드로 돌파구를 만들려고 했을 뿐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비교적 초반인 2018년 3월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실제 이를 추진할 의지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물론 이 대통령의 언급도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기보다 ‘내가 방해하는 일은 없을 테니 국회에서 적극 추진해봐라’라는 소극적 의사표현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결국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의지에 달려

어쨌건 ‘개헌 국민투표와 선거를 동시에 하자’는 정치권 내부의 공감대를 전제로 개헌 시기를 가늠해 보면 내년 지방선거가 1차 시한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10개월 남짓 남은 그때까지 개헌 내용을 공론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아마 개헌이 이뤄지더라도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 ‘감사원 소속 국회 이관’ 같은 일부 내용만 포함될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대통령과 집권 민주당의 의지가 관건일 것 같다. 여당 단독으로 개헌이 불가능한 만큼 국민의힘 의원들을 개별적으로라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대통령과 여당이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라는 얘기다. 그냥 당위론으로 접근해서는 이번에도 개헌은 물 건너갈 가능성이 크다.

남봉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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