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 사제 총기 살인에 ‘청정국’ 지위 흔들

2025-07-22 13:00:40 게재

60대 아버지 유튜브서 제작법 익혀 … 불법이지만 차단 수단 사실상 전무

일본 아베 전 총리, 서울 오패산 사건도 … 정보 차단 전담기관 설치 주장도

인천에서 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한 60대 남성이 유튜브를 통해 총기 제작법을 배운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총기 청정국’이 아니라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유튜브와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 입수한 총기 제작법과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사제 총기 제작이 그리 어렵지 않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살인 등 혐의로 긴급 체포된 A씨는 전날 경찰 조사에서 “유튜브에서 총기 제작법을 배웠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범행 당시 금속 재질 파이프로 만든 사제 총기를 이용해 쇠구슬 여러 개가 들어있는 ‘산탄’ 3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경찰은 언론 브리핑에서 “쇠구슬 크기는 비비탄 정도 크기로 매우 작다”면서 “(총기는 파이프를) 용도에 맞게 잘라 제작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상에 무분별하게 노출된 정보가 언제든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온라인 플랫폼에는 간단한 검색으로 누구나 다양한 사제 총기 제조법 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행법상 사제 총기 제조법을 인터넷에 올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 등 해외 플랫폼에 올라온 콘텐츠의 경우 게시자 특정도 어려워 차단 등 실질적인 조치 수단이 없다.

문제는 이렇게 제작된 총기들이 조악하지만 살상력은 일반 총기에 못지 않다는 것이다.

2022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살 사건도 사제 총기를 이용한 범행이었다. 해상 자위대 출신 40대 총격범은 주거지에서 쇠파이프와 불꽃놀이용 화약, 테이프 등으로 산탄총을 제작했다. 총격범은 경찰에서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총 제작법을 익혔다”고 진술한 걸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미국 유나이티드헬스그룹(UNH) 보험 부문 대표 브라이언 톰슨 CEO 피살에도 3D 프린터로 만든 9㎜ 권총과 소음기가 사용됐다.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아파트에서 사제 총기를 발사해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이 범행에 사용한 탄환 모습. 인천경찰청 제공
국내에선 2016년 ‘오패산터널 사건’이 최악의 사제 총기 사건으로 꼽힌다. 2016년 10월 총격범 성병대는 자신이 거주하는 건물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B씨가 평소 자신을 경멸한다고 생각해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유튜브에서 사제총기 제작방법을 검색해 알루미늄 파이프, 볼베어링, 완구용 폭죽 등으로 사제총 17정을 제작했다.

그는 같은 해 10월 19일 서울 강북구의 한 부동산 사무소 앞에서 B씨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150여m를 따라가면서 자신이 제작한 사제총을 2차례 발사했지만 빗나가자 그를 넘어뜨리고 쇠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범행에 실패한 그는 오패산터널 방향으로 도주해 터널 옆 화단 숲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112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사제총을 발사해 사망하게 했다. 성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경찰이 성씨 사건 직후 유사한 방식으로 사제 총을 만들어 위력을 실험해본 결과, 7m 거리 맥주병이 산산이 부서졌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는 “일반 권총 2/3의 2 정도의 관통력”이라며 “사람 장기를 뚫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년) 사제 총기 사고 건수는 2021년과 2022년 각 1건, 2023년 2건 정도다.

국내에서 사제 총기를 유통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례도 있다.

2021년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외국에서 총기부품을 위장 수입해 총을 제조·판매한 혐의로 B씨와 그 일당을 입건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구매한 총기 부품을 장난감이나 자동차 부품으로 속여 국내로 몰래 들여와 권총 등 완제품으로 조립해 판매했다.

경찰은 이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등에서 직접 제작한 권총 5정, 소총 1정, 실탄 및 총기부품 등 총 138점의 총기류를 압수했다. 이들이 제조한 총기는 미국에서 총기 난사사건의 범행도구로 사용된 일명 ‘고스트 건’으로 불리는 총기로 격발실험 결과 실제 총기와 동일한 기능을 갖췄다.

지난달에는 서울경찰청이 쇼핑몰 등을 통해 2억2000만원 상당의 불법 모의 총기 820정을 적발했다.

국과수에 따르면 해당 모의 총기는 비비탄을 발사하는 에어소프트건이었지만 유리잔과 캔을 관통하는 등 법적 기준치의 7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져 사람이 피격 당하면 최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사제 총기로 인한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총기 부품과 제작법 등에 대한 단계별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교수(경찰사법대학)는 “오패산 사건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제도적 개선이 거의 없다”면서 “무기 제작 관련 콘텐츠를 감시하고 자료 삭제 절차를 최대한 이행할 수 있는 대응 전담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담기관을 공적영역에서 직접 운영할지, 아니면 시민단체 등에게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인 지는 논의해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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