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권 칼럼

지도가 세상을 바꾼다

2025-07-24 13:00:01 게재

중세 이전 지도에는 세상의 끝이 있었다. 바다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거다. 머지않아 “지구는 둥글다”는 새로운 지도가 나왔다. 축적도 위치도 부정확했지만 이 지도가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손 안의 모바일 지도로 골목길까지 찾아가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도 관련 퀴즈 하나. 남북이산가족이 고향을 추억할 때 보는 지도는? 네이버 지도라고 대답했다면 “땡~”이다. 정답은 구글 지도다. 강원도 고성~금강산~원산지역을 보자. 버스와 배로 관광했던 금강산이다. 하지만 네이버 지도는 깜깜 먹통이다. 고성읍~통천읍~원산시 외에 아무런 지명이 없다.

반면 구글 지도는 고성군~장전읍~통천군~봉천군~원산시까지 자세하다. 큰 지명은 한글로, 리(里) 단위의 작은 지명은 영문으로 표기돼 있다. 여기에 평양-원산고속도로와 마식스키리조트, 아마도 군사용일 듯한 구읍리비행장까지 표시돼 있다.

네이버는 북한의 지도반출을 승인 받지 못했을까. 북한은 왜 구글에 지리정보를 제공했을까. 평양을 보면 ‘로씨야 대사관’과 국가보위성전파감독국, 류경정주영체육관과 ‘베스트 아메리칸 피자’까지 자세하다. 이산가족은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여기가 거기인가”하며 달라진 지명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네이버와 구글 국내 지리정보에 차이

국내 지리정보도 차이가 있다. 구글과 네이버 지도를 같은 축척으로 비교해 보면 표출되는 건물과 상호가 조금씩 다르다. 음식점이나 카페 경우 대체로 비슷하나 프랜차이즈는 종종 배제되기도 한다. 예컨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의 몽촌토성역 인근을 보면 구글은 특정 프랜차이즈 음식점만 나오는 반면 네이버는 이들 음식점이 살짝 숨겨져 있다. 대신 커피 프랜차이즈와 모텔은 잘 나온다.

그런 점에서 국내 젊은이들이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찾아가기에는 네이버가 유용하겠다. 반면 외국인은 불편할 듯하다. 대다수가 구글 지도를 이용하는 만큼 관광 한국이란 측면에선 그만큼 불친절한 셈이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는 최근 구글과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요구하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반출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가 아닌 해외 서버로 반출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국내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구글이 지난 2월 고정밀 지도의 반출을 요청한데 대해 안보문제로 거절하고 오는 8월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하지만 위성사진으로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하는 시대에 지도의 반출여부가 논란이 되는 상황은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혹시 안보문제 외에 국내 온라인기업의 이해득실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특히 최 후보자가 네이버 비즈니스 플랫폼 대표이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입길에 오르고 있다. 그 자신도 공저자로 참여한 ‘대한민국 관광대국의 길’에서 정부의 지도반출 금지조치를 비판했다.

최근 지도 논란은 설마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대한 억측의 연장선은 아닐 것이다. 흥선대원군이 김정호를 박해했다는 설 말이다. 나라 정보가 외국에 알려질 것을 염려해 목판을 불태우고 옥에 가둬 숨지게 했다는 거짓말이다. 이는 조선총독부 조작으로 밝혀졌다. 박해도 없었고 김정호는 1866년 폐병으로 숨졌다고 전해진다. 오히려 조정이 지도제작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지도를 불온하게 여겼다는 억지는 식민사관의 일환일 지도 모른다.

대항해시대 지도는 세계를 보는 일종의 망원경이었다. 인공위성시대인 지금 지도는 구석구석 360도 뷰로 접근하는 현미경이다. 군사적으로는 어떨까. 위성을 통해 현장 상황을 개와 닭까지 구별하며 드론이나 유도탄으로 정밀 폭격하지 않나.

사실 고정밀 지도가 주목받은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평면적 2차원 지도가 담지 못한 도로의 경사와 신호등 표지판 등을 입체적으로 구현하는 거다. 기존 지도의 오차범위가 1m 단위였다면 고정밀 지도는 10cm 남짓이라고 한다.

이런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은 엄청난 비용이 든다. 모바일 맵핑 시스템을 장착한 차량으로 주행 데이터를 누적 합산해야 하는 거다. 전기자동차 테슬라의 미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안보를 고려하는 것도 일리가 있겠지만 이들 해외 기업과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접점을 찾는 것은 어떨까.

고정밀 지도 쇄국정책으로 낙오돼선 곤란

대항해시대 지도는 제국 권력의 나침반이었다. 지금 4차 산업혁명에 새로운 개념의 고정밀 지도가 미래권력의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동차의 자율주행에 국한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AI)을 바탕으로 세계 주도권의 판도가 바뀌는 거다. 혹여 고정밀 지도의 쇄국정책으로 미래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겠다.

언론인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