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트럼프도 손들게 한 중국의 ‘희토류 카드’

2025-07-28 13:00:03 게재

“중동에는 석유가 있지만,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中國有稀土).” 1992년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이 남순강화(南巡講話)에서 한 말이다. 이 남순강화는 선부론(先富論, 부자가 될 사람은 먼저 부자가 되게 하자)과 개혁개방을 천명해 중국이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의 희토류 언급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33년이 지난 지금 트럼프가 다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고 미중 관세전쟁이 격화되면서 희토류는 양국 협상에서 가장 빛나는 전략카드로 떠올랐다.

올해 봄 미국은 중국에 최고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인공지능(AI)용 그래픽 처리 장치(GPU, Graphics Processing Unit)를 비롯해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의 수출을 금지했다. 이에 중국은 최고 120%의 보복 관세와 함께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섰고 양국의 무역 분쟁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결국 두 나라는 지난 6월 런던에서 2일간 협상을 벌였고, 일단 관세전쟁은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중국은 미국이 간절히 요구한 7종의 희토류 중 6종에 대한 수출규제를 완화하고 관세도 10% 수준으로 낮췄다.

미국은 중국이 요구한 반도체 수출 통제를 일부 완화하고 관세율을 50%로 인하했다. 누가 이긴 협상인지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이번 타결은 상호 ‘윈윈카드’를 사용한 결과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핵심 협상카드는 희토류와 첨단 반도체

양국의 핵심 협상카드는 희토류와 첨단 반도체였다. 중국의 희토류는 첨단 무기와 전자산업에 필수적인 소재로, 중국은 세계 공급량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반면 미국의 반도체는 중국에 절실하지만 중국은 자국 내 생산품으로 일부 대체하며 장기적으로는 독자 개발을 추진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긴급성을 놓고 보자면 미국이 급하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번 협상에서 7종 중 6종의 희토류 수출을 허용했지만 사마륨(Samarium)은 제외했다. 이 물질은 왜 중국이 쉽게 내주지 못하는 카드일까? 그것은 사마륨이 고온과 충격에 강한 특성을 지녀 초음속 항공기와 정밀 유도 미사일, 특히 스텔스 전투기에 꼭 필요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F-35 스텔스 전투기는 미국의 최첨단 공군력을 상징하는 기종으로 한국도 보유 중이다. 핵추진 항공모함 1척에는 약 35~40대의 F-35가 탑재된다. F-35 1대에는 약 400개의 희토류 자석이 필요하다. 이중 다수는 사마륨-코발트(Sm-Co) 자석이다. 한대 제작에 사마륨 28㎏이 소요된다.

미국은 1970년대부터 이 물질을 항공기와 미사일에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사마륨 없이는 전투기 제작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따라서 희토류, 특히 사마륨의 공급 중단은 미국 안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이 런던협상에서 강력히 요구했음에도 중국이 사마륨 카드를 고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사태는 희토류가 단순한 자원이 아닌, 국제정치의 핵심 전략물자임을 보여준다. 덩샤오핑은 남순강화에서 희토류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원의 강점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중동의 석유와 중국의 희토류를 대비한 이 언급은 그가 이 자원을 얼마나 전략적으로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희토류 개발에 착수했다. 이 개발의 기폭제는 덩샤오핑이 등용한 기술관료 팡이(方毅)였다. 문화혁명 시기 실각했던 팡이는 1978년 국무원 부총리 겸 과학기술위원회 주임으로 임명되자 즉시 내몽고 바오터우(包頭)를 찾아 철광석에 다량 포함된 희토류를 확인했고, 일급 엔지니어들을 데리고 미국의 첨단 기술 현장을 시찰해 그 쓰임새를 직접 목격했다.

덩샤오핑과 팡이는 차세대 희토류 전략가로 베이징 지질연구소에서 지질학 석사 학위를 받은 원자바오(溫家寶)를 선택해 육성했다. 원자바오는 후진타오 정부의 총리에 오른 뒤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희토류 정책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희토류는 첨단무기뿐 아니라 각종 전자제품, MRI 등 의료기기, 배터리와 풍력발전기 날개 등 재생에너지 관련 제품에 광범하게 쓰이고 있다. 희토류 소재가 빠진 첨단 방위산업, 전자산업, 재생에너지 산업은 상상하기 어렵다.

미래의 자산 발굴·육성하는 리더십 필요

앞으로 최소 4년은 미중 간 무역전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역협상은 결국 ‘어떤 카드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희토류는 하루아침에 생긴 카드가 아니다. 자원을 전략자산으로 만들고 그것을 통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준비해온 지도자들의 혜안과 집념의 산물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지도자들도 지금이야말로 자국이 보유한 전략자산을 점검하고, 미래의 자산을 발굴·육성하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