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2035 감축목표, 벼락치기는 하지 말자

2025-07-30 13:00:02 게재

일부를 제외하면 개학을 앞두고 벼락치기로 여름방학 숙제를 했던 기억을 누구나 한번쯤 가지고 있을 것 같다. 가장 고역은 일기쓰기였다. 방학 내내 놀기만 하다가 개학을 하루이틀 앞두고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그제야 꾸역꾸역 내용을 창조해 냈던 기억이 난다.

가장 큰 난관은 바로 일기장 한편에 적게 되어 있는 날씨 칸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 검색을 할 수는 없으니 기억을 가물가물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꼼수는 꼼꼼한 선생님에게는 금방 들통났다. 신문과 일기장 날씨를 대조해 보고 거짓말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정부가 오는 9월까지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만들어서 유엔에 제출한다고 한다. 지금이 7월 말이니 한두 달 정도 작업해서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벼락치기도 이런 벼락치기가 없다. 몇개월 동안 모든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이면 곤란하다. 모든 벼락치기가 그렇듯이 내용도 부실하고, 앞뒤가 맞지 않을 것이 뻔하다.

우리는 불과 2년 전, 실패를 경험했다. 윤석열정부는 대기업들의 감축 부담은 대폭 줄여주고 이 부담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영역으로 전가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의뢰로 만든 산업연구원 보고서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는데, 환경부와 2050탄소중립녹색위원회도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벼락치기로 국가 계획에 반영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배출권 가격은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어떤 기업들도 혁신적인 감축 기술에 투자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 결정을 뒷받침했던 소위 ‘전문가’들이 지금 2035년 NDC를 수립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정부가 까먹은 탄소예산을 복원하려면

이재명정부는 달라야 한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숙제를 준비해 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감축목표를 설정해야 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줬고, 국회는 이 결정에 따라 내년 2월까지 2035년을 포함한 중장기 감축 목표를 정할 예정이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숙제를 조금 늦게 내더라도 국제 사회에서는 충분히 양해가 될 수 있다.

헌재가 제시한 답은 간명하다. 미래세대 부담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탄소예산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리협정이 제시한 1.5℃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하고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국제적으로는 ‘탄소예산’이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대략 87억톤 수준의 탄소예산이 남아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문제는 윤석열정부에서 대기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감축목표를 느슨하게 설정하는 바람에 약 70%에 달하는 탄소예산이 2030년까지 소진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현 정부가 2035년 NDC를 통상적인 수준으로 정하게 되면 그때까지 써버리는 탄소예산은 90%에 달한다. 미래세대가 쓸 수 있는 탄소예산은 1/10밖에 안된다.

미래세대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전적인 2035년 NDC 설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강력한 목표설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숫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탄소예산에 관심이 없고, 소위 ‘실현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대형발전소와 대기업에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블라인드를 치고 ‘대외비’ 처리하는 것은 덤이다.

이런 상황에서 2035년 NDC를 9월까지 졸속 처리한다면 우리나라는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한번 목표를 정해버리면 국회 차원의 논의가 대폭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절대다수 의석을 보유한 여당이 정부 목표를 다시 높이자고 요구하기도 어렵고, 이미 발의된 개정안들도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된 숙제를 내자

당연히 사회적 지지를 확보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어렵다. 탄소중립 사회 전환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세심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내용을 두달 안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통과 이전에 한차례 정도 열리는 공청회로 이를 갈음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유엔이 내준 숙제를 벼락치기로 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헌재 결정을 우리나라 감축 목표에 어떻게 반영할지, 시민과 당사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지 제대로 숙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제 때에 맞추어 엉터리 숙제를 내는 것보다 조금 늦지만 제대로 된 숙제를 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감축목표’ 논의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권경락 정책활동가 기후환경단체플랜1.5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