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례 감독 받고 또 후진국형 산재 사망

2025-07-30 13:00:03 게재

포스코이앤씨 사고에 이재명정부 ‘산재와 전쟁’… 예방가능한 사고, 반복 기업이 타깃

이재명정부가 산업재해(산재)와 전쟁을 선언했다. 취임 후 여러 차례 경고에도 예방 가능한 이른바 후진국형 산재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이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형사처벌은 물론 경제적 제재까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후진국형 산재만은 막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재 줄이기에 직을 걸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나서 눈길을 끈다.

정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발단은 올들어 4차례 사고로 4명이 사망한 포스코이앤씨다. 특히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현장에서 사면 보강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지반을 뚫는 기계에 끼여 숨진 28일 사고는 이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의 대응을 주문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고용부는 사고가 발생하자 포스코이앤씨 본사와 전국 65개 공사 현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감독에 착수했다.

김영훈 고용부 장관은 29일 “대형 건설사 현장에서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해 발생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앞서 세 차례 중대재해가 발생해 집중 감독을 받았음에도 또다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본사와 최고경영자의 안전관리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벌백계의 관점에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 엄정히 수사하고, 현장 불시감독과 본사 감독을 통해 구조적이고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까지 잇단 사망사고를 비판하자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대표이사 사장은 29일 오후 인천 송도본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올해 저희 회사 현장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로 큰 심려를 끼쳐드린 데 이어 또다시 이번 인명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참담한 심정과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해 안전이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우려에도 3주만에 또 맨홀 질식 사고 = 포스코이앤씨와 함께 ‘인천 맨홀 사고’로 노동자 2명이 숨진 뒤 이재명 대통령이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고 지시한 지 약 3주 만에 발생한 서울 금천구 상수도 맨홀 사고도 이날 도마에 올랐다.

서울 금천소방서와 금천경찰서에 따르면 27일 낮 12시 39분쯤 금천구 가산동 상수도 누수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70대 남성 2명이 질식해 쓰러졌다. 이들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심정지 상태였으며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에 이송됐다. 하지만 이날 오전 3시쯤 1명이 숨지고 다른 1명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서는 작업전 산소 농도 측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작업자들도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소방 당국이 측정한 맨홀 내부 산소농도는 4.5% 미만으로 질식 위험이 큰 상태였다.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사장이 29일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사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5대 후진국형 재해’ 반복 = 문제는 이들 사고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산재 사고라는 점이다.

후진국형 산재는 안전장치와 수칙 준수 등으로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망 사고 요인으로 작용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추락·충돌·끼임·넘어짐·물체에 맞는 등의 사고가 이른바 ‘5대 후진국형 재해’로 꼽힌다.

올들어 후진국형 산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반복되고 있다.

지난 29일 충북 음성군의 한 야적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는 크레인을 이용해 10m 높이에서 조립식 주택 구조물을 쌓는 작업을 하다 지상으로 떨어져 숨졌다. 고용부는 사고 경위와 사업주의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28일에는 충주시 한 이차전지 소재 제조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깊이 5m의 탱크 내부로 추락해 병원에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현장에 폐쇄회로(CC)TV는 설치돼 있지만 사고 장소는 촬영 사각지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공장 관계자를 상대로 안전조치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확인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계획이다. 고용부는 이 공장에 작업 중지를 명령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법령 위반 사항이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후진국형 사고는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뿐 아니라 대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소방당국과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28일 강원도 동해시 구호동 한국동서발전 동해화력발전소에서 근무 중이던 30대 노동자가 비계 해체 작업 중 약 8m 아래로 추락했다. 그는 추락 직후 심정지 상태로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망한 노동자는 하청업체 소속 단기 근로자였으며, 사고 당시 발판 사이의 빈틈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발전소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사고 발생 후 대책위는 입장문을 내고 “지난 6월 2일, 태안화력에서 고 김충현 노동자가 사망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동서발전 동해화력에서 같은 비극이 되풀이됐다”며 “죽음의 발전소, 정부가 제2의 김충현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죽음은 우연도, 예외도 아니”라며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 이후, 대책위는 정부에 발전소의 하청구조, 위험의 외주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말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이 한 번, 김민석 국무총리가 두 번 ‘논의하겠다,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변화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노동자 출신 장관 “직 걸고 줄이겠다” = 한편 노동자 출신인 김 장관은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장관직을 걸겠다고 나섰다.

김 장관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상당 기간이 지나도 산업재해가 안 줄어들면 진짜로 직을 걸라”는 말에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줄지 않는 산재 사고와 관련 △저임금·장시간 노동 △지배구조 △최고경영자 위험 회피 등을 원인으로 분석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또 “사망사고 발생시 실질적 제재가 가능한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겠다”며 “형사적 처벌과 함께 징벌적 손해배상 등 경제적 제재와 공공입찰 제한, 복잡한 지배구조 거버넌스에 대해 실질적 책임 있는 자, 권한 있는 자에게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장세풍·한남진·김성배·김형선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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