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루밍(Grooming), 알고 계십니까?

2025-07-31 13:00:03 게재

‘그루밍’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이는 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신뢰와 지배 관계를 구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범죄는 ‘가스라이팅 범죄’라고도 불린다. 피해자 전담 국선변호사로 활동하다 보면 피해자나 그 부모님께서 “가해자로부터 그루밍을 당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루밍과 가스라이팅을 경험한 피해자들은 때로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피해자의 경우, 친한 친구나 연인으로 생각했던 상대방의 요청에 따라 지속적으로 나체 사진이나 자위 영상을 촬영해 보내는 사례가 발생한다. 가해자는 강압적인 협박 없이도 통화나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요청하며, 이를 거절할 경우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피해자를 조종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피해자는 점차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워지고, 심지어 상대방의 환심을 사기 위해 스스로 사진이나 영상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법적 처벌 쉽지 않은 가해자

문제는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하고 전송했기 때문에 가해자가 이를 유포하지 않는 한 법적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같은 중학교에 다녔던 한 사례를 보자. 가해자가 피해자가 보낸 사진과 영상을 유출하면서, 전교생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피해자는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고 결국 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만 14세 이상이었기에 가정법원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되었다. 그러나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가해자의 진술조서나 제출된 증거를 열람할 수 없었고, 심리에 방청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가해자가 어떤 보호처분을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가해자가 미성년자라 소년보호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들을 때마다, 피해자의 권리가 철저히 배제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가해자의 엄벌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뿐이다.최근에는 10세 미만 초등학생이 동성 친구를 유사 강간한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만 10세 미만 아동은 형사 처분은 물론 보호처분 대상에도 해당하지 않아 수사조차 쉽지 않았다. 수사관은 “가해자 부모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부모와 면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범행 장면을 촬영했다”고 진술했지만, 가해자 부모가 임의로 제출하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확보할 방법조차 없었다. 만약 가해자가 만 14세 이상이었다면 처벌이 가능했을까? 미성년 가해자들은 대부분 지은 죄에 비해 가벼운 보호처분만을 받을 뿐이다.

오히려 “미성년자라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심어질까 우려스럽다. 피해자 국선변호사로서 중대한 성범죄와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의 모습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다.

피해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피해자의 편에서 싸울 수 있고, 피해자를 위해 가해자의 엄벌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일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의미 있고 보람도 크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것,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필자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이다.

박상아 대한법률구조공단 국선전담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