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베센트의 고육책 ‘단기채 위주’ 전략
7월 말에서 8월 초로 예상되던 미국 연방정부의 단기적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사라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7월초 집권 2기 국정과제 실현의 핵심 내용이 담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에 서명하면서 연방정부의 ‘부채한도’가 36조1000억달러에서 5조달러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연방정부의 재정건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부채한도를 설정한다. 한도가 넘치면 기존채무를 갚을 수 없어 연방정부가 디폴트상태를 선언한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미 의회에서 부채한도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아 연방정부의 업무가 35일간 마비(셧다운, Goverment Shutdown)된 적이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셧다운 기간이다. OBBBA의 시행은 단기적으로 연방정부의 디폴트 가능성을 없앴지만 장기적으로 연방정부의 재정건전성과 미국 국채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조달러 넘는 신규 국채발행 하반기에 몰려
바로 직전 미국의 채무한도 유예기간은 2023년 6월 3일에 시작해 25년 1월 1일 종료됐다. 25년 1월 2일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36조1000억달러다. 올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2조달러가 될 전망이었기 때문에 대략 상·하반기 각각 1조달러씩의 신규 국채발행이 예상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미국의 국가부채는 올해 이자 증가분 5500억달러를 추가한 7월 18일 기준 36조6500억달러 수준이다.
미국정부는 신규 국채발행 없이 올해 상반기를 버텼다. 여기에 두가지 방법이 활용됐다. 첫번째, 재무부 TGA계정에서 4700억달러를 끌어다 썼다. 두번째, 공무원연기금에서 5400억달러를 빌렸다. 두가지를 합해 총 1조달러 규모의 현금이 조달됐다. 미국 정부는 트럼프 취임 이후 6개월 동안 신규 국채를 전혀 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5%에 육박했던 10년물 국채금리를 4.3% 정도로 안정시킬 수 있었다.
문제는 OBBBA 서명 이후인 올해 하반기부터다. 미뤄왔던 국채발행이 한꺼번에 진행된다. 상반기에 발행했어야 할 국채가 1조달러가 넘는다. 공무원연기금에서 빌려온 5400억달러를 상환해야 되고 8월이면 바닥날 TGA계정에 7500억달러의 현금을 채워놔야 정상이다. 이들 조치에 약 1조3000억달러가 소요된다. 하반기 예상 재정적자가 1조달러다. 따라서 하반기 신규 국채발행은 약 2조3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
2조달러가 넘는 규모의 미국채가 신규로 발행되면(만기연장을 위한 국채발행 제외)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날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자. 바이든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23년 하반기, 6개월 동안 밀렸던 미국채 1조달러가 한꺼번에 발행된 적이 있다. 5월 3.4%밖에 되지 않던 10년물 미국채금리가 5%를 돌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2007년 이후 16년만에 최고 수준이었고 글로벌 자산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지금 10년물 국채금리는 4.3%다. 이런 상태에서 한꺼번에 2조3000억달러의 신규국채가 발행되면 금리가 심리적 저항선인 5.0%를 넘어 6.0%까지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은 바이든 재임 시절보다 훨씬 어렵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총괄하는 역레포(Reverse Repo) 잔고에는 2조1000억달러가 쌓여 있었다. 연준이 채권 매각을 통해 코로나19 때 풀린 돈을 일시적으로 흡수한 자금이다. 재닛 옐런 당시 재무장관이 역레포 잔고를 이용해 신규 발행 단기국채를 매입하면서 금리상승을 막을 수 있었다. 옐런 장관이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면 미국채 금리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을 것이다. 역레포 잔고는 전 고점 대비 94% 감소해 현재 1500억달러 수준이다.
글로벌 자산시장에 닥칠 충격 대비해야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대책마련에 혈안이다. 신규부채 조달도 문제지만 당장 12개월 내 만기도래하는 9조달러의 기존부채 차환도 골칫거리다. 장기채 수요를 확대하기 위해 은행의 자본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국채시장에서 은행의 비중이 6.3%라 그 역할은 제한적이다. 금리인상 전망도 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데 부정적 요소다.
베센트 장관이 선택한 고육책은 ‘단기채 위주 발행’ 전략이다. “단기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건 도박”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던 옐런 전 장관의 전략을 계승하겠다는 의도다. 단기채 수요 확대를 위해 스테이블 코인시장을 육성하겠다고 하지만 시가총액이 2700억달러에 불과해 버팀목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6조~6.5조달러 규모의 초단기 금융상품 MMF가 하반기 단기채 시장에서 가장 큰 수요처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자산거품과 인플레이션 위험이다.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으면 장기금리는 또 오를 수 있다. 하반기 미국채 발행이 글로벌 자산시장에 미칠 충격에 대비할 때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