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진단
이재명정부, 통일에 대한 명확한 입장 세울 때
트럼프정부 출범 6개월, 이재명정부 출범 50일이 지난 시점에서 북한은 그간 긴 침묵을 깨고 한국과 미국과의 대화에 관한 입장을 밝혔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되고,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시점에 미리 준비된 비교적 체계적인 내용이다. 미국의 관세협상이 어느 정도 마감되고, 뜨거운 사안이었던 우크라이나전쟁 가자전쟁 이란문제가 일단락되거나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북한 문제가 전면에 나올 가능성이 있는 시점이다.
북한은 북미대화 개시의 조건을 밝히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능력 증강, 핵전략 변화 등을 근거로 비핵화가 더 이상 북미회담의 의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미국이 추진해 온 지역 및 세계전략이 공격적인 패권적 군사전략이므로 군사적 억제를 위해서도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도 깔려있다.
북러동맹 조약 및 우크라이나 파병, 이로 인한 경제적 이익, 외교적 성과 등 전략적 이득이 매우 견고하기 때문에 북미협상에 절박한 이유가 없다는 점도 나타난다.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 이후 2020년 7월 10일 김여정의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개인적 관계가 좋다고 해서 북미관계가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외교적 승리 포장용으로 대북접근
미국은 김여정의 담화 직후 비핵화를 목표로 한 협상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측 언급이 잦아지면서 이미 북미접촉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언론의 추정도 존재한다.
트럼프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은 대통령을 포함해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부르며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한 적은 거의 없다.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 경우 협상 자체가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핵군축 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핵군축과 비핵화는 병행할 수 없다. 이러한 논의들은 협상 시작 이전 각자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것으로 명분을 확실히 한 이후 구체적인 협상에 들어갈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협상이 시작되어 한반도 비핵화를 장기적인 목적으로 남겨놓고 구체적인 실익을 얻는 데 노력해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소위 스몰딜을 통해 북한의 핵 능력 동결을 약속하고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적 이득을 얻는 한편, 군사적으로도 한미동맹의 변화에 여러 요구를 할 수 있다. 주한미군 축소,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획득,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제재조치 해제, 필요에 따라서는 광물 협정이나 관광개발 등 북한이 얻을 수 있는 실익은 많다.
미국으로서는 북한 핵동결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얻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승리를 선언할 수 있다. 관세협상 이외에 외교적으로 커다란 성과가 없는 현 상황에서 이란에 대한 폭격에 이어 북한과의 협상은 외교적 승리로 포장될 수 있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이란과 북한 등 소위 수정주의 축 국가에 대한 전략의 성공이다.
러시아 중국 이란은 수정주의 축 국가 중에서도 각각 지역 패권국가로 쉽게 다룰 수 없지만, 북한은 이와는 달리 지역패권을 추진할 수 있는 국가는 아니다. 핵무기 개발로 영향력을 확보하고 러시아전쟁에 참여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훨씬 쉽게 외교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수정주의 축 국가로 네 국가를 묶는 경향이 있지만 북한의 비중은 훨씬 적다고 보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해 미국 내 전략공동체에서는 많은 우려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섣부른 판단으로 한미동맹의 대북 억제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미중 전략경쟁시대에 한미동맹의 변환에 대해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을 주된 위협으로 상정하면서 대북 군사억제는 한국에 맡긴다는 논의이다. 주한미군의 규모 축소,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 전시작전권 환수 등에 대한 논의는 북미 정상회담과 별도로 이미 상당 부분 예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것들을 약속하더라도 미국 내 전략 공동체 안에서의 반대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경우와는 달리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쉽게 양보할 수 있는 카드가 마련된 것이다. 일정한 경제제재 해제를 약속하면서 광물협정 자원개발, 관광추진 등 단기적 국익을 위한 합의도 추진할 수 있다.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을 억제한다는 군사적 성과를 얻을 수도 있다.
북미 스몰딜 가능성에 한국 고민 깊어
스몰딜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남북 관계에 대한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김여정 담화에서 남북관계는 조한 관계로 대체되었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북한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안정을 위한 군사적 억제력 확보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우선인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미국에게 중대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도 러시아 중국 미국에 비해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북한은 통일의 가능성을 사실상 포기하고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전환한 채 한국을 중대한 실익을 얻을 수 없는 국가로 간주하고 있다. 다만 한미동맹이나 한미일 군사협력이 지역 안보를 해치고 북한의 안보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위협 요인으로 비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다음의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단기적으로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간 안정과 평화는 오히려 달성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남북대화나 관계개선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와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국에게 군사적 위협을 가할 여유나 의지도 크지 않다. 이 기간 중에 한국정부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둘째, 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국의 대북 억제력이 약화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규모 축소나 기능 변화는 한국 안보에 중대한 변화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 안보 질서가 급변하는 가운데 한미동맹의 역할과 기능, 대북 억제전략, 특히 핵 확장 억제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고 동맹의 기반에 대한 한미전략 대화를 명확히 해나가야 한다.
셋째, 단기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더라도 트럼프정부의 임기 이후 새로운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북미대화의 지속성과 제도화 없이 얻은 일시적 성과는 빠르게 무효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 대비가 필요하다. 한반도 안보 정세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변수들에 대한 면밀한 고찰도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과에 따라 북러 협력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북한의 경제가 러시아에 의존하여 지속 가능한지, 북중러 삼각 협력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인공지능 등 기술변수는 안보 상황을 급변시키는 중대한 변수다. 북한 역시 이러한 흐름을 인지하고 인공지능의 개발과 상용화, 군사적 이용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북러 간 과학기술 협력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북한은 과학기술을 통해 군사력을 증진시키려는 장기적 전략을 추진 중일 가능성이 높다.
통일에 대한 장기적 비전 제시를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해 이재명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가치이며, 이는 북한 정권의 입장이 아니라 북한 주민의 열망과 연결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 사회 내에서도 통일에 대한 열망이 약화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정부는 국민들의 통일 의지를 명확히 확인하고 이를 제고하기 위한 장기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현 정부 나름의 통일 정책을 차근차근 점검하고 수립해나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