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칼럼
젊은이들에게 배워야 할 시대
물리학자들은 한학기 수업이 끝나고 방학이 시작되면 학회 참석 여행을 떠난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자기 분야 전문가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지난 학기동안 전세계에서 이룬 첨단 연구결과가 무엇인지 듣고 배우고 토론한다.
필자도 올 여름을 바쁘게 지내고 있다. 대중에게는 휴양지로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에는 수준 높은 공과대학이 자리잡고 있다. 그림 같이 아름다운 열대의 해변을 배경으로 산 중턱에 최신식 연구동과 기숙사가 자리를 잡고 장학금으로 전세계에서 우수한 대학원생을 불러 모은 연구중심 대학이다.
학회 마지막 발표자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오시카와 교수였다. “이 학회 참석자 중 내가 최고령이더라”란 멋쩍은 고백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에 걸맞은 뛰어난 강연이 이어졌다. 그보다 겨우 한살 적은 필자는 두번째로 나이 많은 학회 참석자란 명예를 자동으로 수여받았다. 아들 또래 연구자들의 수준 높은 연구 결과 발표에 귀 기울이고 질문하고 배우며 벅찬 한주일을 보내고 왔다.
학회식사와 다과시간 역시 발표 내용에 대한 후속 질문과 토론의 연장이다. 필자는 영락없이 질문하고 배우는 쪽이다. 연구경력만 따지면 대부분의 발표자보다 족히 20년은 많으니 지식과 업적의 총량에서는 앞서겠지만 필자가 쌓은 지식은 이미 문서화되어 완성된 지식이고 젊은이들의 지식은 새롭고 미래를 주도할 동력이다. 시대의 흐름을 이끌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말을 많이 하는 게 자연스럽다. 누가 누구에게 질문하고 배워야할지는 자명하다.
미래세대 이끌 젊은이에게 배우는 건 당연
오시카와 교수는 내년 1월부터 미국 어느 주립대학에 석좌교수급 대우를 받으며 이적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박사를 받고 30년 가까이 교수 생활을 했던 일본인이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굳이 미국으로 가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답의 요지는 간명했다.
첫째, 일본은 나이가 들수록 연구보다는 행정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기대하는데 그는 여전히 지식의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이고 싶다. 둘째, 일본의 학계 분위기는 활발한 토론보다는 ‘닥치고 계산이나 해’란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데 그에게는 토론문화가 더 매력적이다.
마지막 이유는 그의 말이 아니라 필자의 짐작이긴 하지만 ‘좋은 대우’인 듯싶다. 미국의 대학은 신임교수를 뽑을 때 정착금 형태의 연구비를 몇억원씩 학교 재정으로 마련해 주고 이 연구비로 자기만의 연구실을 꾸리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국내 어느 대학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착된 바 없는 제도다.
게다가 석좌교수급에게 주어지는 특별 연구비까지 합하면 앞으로 5년 이상은 굳이 학교 외부에서 연구비를 신청해서 받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될 환경을 보장받았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그 동안 대학교에 주었던 연구비를 가차없이 삭감하는 현 상황 속에서, 대단한 재정을 자랑하는 사립대도 아닌 주립 대학교가 이런 경제적 보상책으로 외국의 석학을 끌어가는 모습이 부러웠다.
오키나와공대의 학회에서 필자가 발표를 하는 도중 누군가 손을 들어 이의를 제기했다. “당신이 방금 발표한 내용은 이미 다른 사람 논문에 나와 있다.” 연구자에게는 지옥의 불내림 같은 말이 바로 자신이 몇 달 간 고생해서 얻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 전 다른 누군가 똑같은 결과를 먼저 발표했다는 소식이다. 게다가 그 논문의 두 저자인 교토대 대학원생 두 명은 학회장 뒷자리에 앉아 차분히 필자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다행히 그 밖의 연구결과도 필자의 발표 내용에 들어있던 터라 남의 결과만 재탕하는 헛수고는 면했지만 물리학이란 학문 분야는 젊은이들의 놀이터이고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새삼 얻는 귀한 체험을 했다.
오키나와 학회에서 만난 미국의 물리학자는 다이빙 전문가이고 한국의 떡볶이와 게장을 좋아하고, 언젠가 제주도에서 해녀들과 함께 전복을 따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문득 오키나와와 자연환경이 비슷한 제주도가 떠올랐다.
오키나와공대는 일본정부의 상당한 재정 투입으로 운영되는 중이다. 이미 관광지로서 제주도의 명성은 오키나와에 뒤지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력이 일본과 비등해졌다는 자랑도 요즘은 일상이 되었다. 이 기회에 제주도에 연구중심 대학을 설립해 아시아권 인재를 끌어모으는 건 어떨까? 충분히 실현가능한 계획인 듯하다.
귀국 후에도 비슷한 주제의 학회가 연달아 서울과 대전에서 열린 덕분에 값진 귀동냥을 하는 호사를 누렸다. 젊은이들의 잔치라는 점에서는 오키나와 서울 대전의 세 학회가 모두 한결 같았다.
배워야 할 사람이 가르치려 들면 안돼
필자가 경험과 연륜을 뽐낼 기회는 학회가 마무리 된 후 반나절 빈 시간을 이용해 외국의 젊은 참석자 몇 명을 데리고 경복궁과 북촌 관광 안내를 자처했을 때 뿐이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모습을 알아볼 기회도 있었다. 미국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한국의 깔끔한 대중교통 시설, 화려한 카페, 맛있는 팥빙수와 삼계탕은 호기심을 넘어 경탄의 대상이었다.
한국의 이론 물리학 수준은 아직 그만 못했다. 필자가 그만한 대가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경청하는 법을 잊을 만큼 노쇠하진 않았다는 게 위로가 됐다.
학문의 전성기를 한참 지나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에 최신 학계의 동향에 어두운 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꼰대란 자신이 묻고 배워야 할 자리에서 가르치려는 사람이다. 묻고 배워야할 자리와 가르칠 자리를 구분하는 지혜를 구하며 물리학자의 더운 여름이 무르익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