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건강권’ 위협하는 액상전자담배, 국회 규제 외면

2025-08-06 13:00:03 게재

규제 법안 수년째 표류, 이용률 높아지며 청소년 ‘흡연 관문’ 역할 … 청소년보호법 있지만 온라인·자판기 유통 무방비

국회가 합성니코틴을 담배 원료에 포함해 담배세를 부과하는 문제로 수년째 논의만 반복하는 사이, 이를 주원료로 하는 액상형 합성니코틴 전자담배(액상전자담배)가 청소년들에게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당국 수장이 논란에 가세하면서 액상전자담배 규제가 세제 문제를 넘어 국민, 특히 청소년 건강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액상전자담배로 위장한 신종마약까지 번져 세제 문제로 접근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뿐 아니라 보건복지위원회와 교육위원회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인사청문회 서면 질의답변서에서 “액상전자담배도 궐련 담배와 마찬가지로 건강에 유해하므로 동일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를 연초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사용하는 제품으로 한정한다. 현행법상 담배는 담배 제조·유통·판매 허가 등에 관리·감독을 받아야 하며 경고문구·그림 표기, 가향 물질 표시 제한, 광고 제한 등 규제를 받는다.

정 장관은 이에 대해 “액상전자담배에도 일반 담배와 똑같은 규제가 적용되도록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정의를 ‘연초 잎’에서 ‘연초 및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작업을 지속해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OECD 회원국 대부분 규제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개원 이후 제출된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10건이다. 이들 법안은 국회 기획재정위에 상정됐지만 상임위 소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개정안들은 합성니코틴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액상전자담배도 ‘법률상 담배’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내서 유통되는 전자담배는 액상형과 궐련형으로 나뉜다. 이 중 액상형은 니코틴 용액과 희석제(PG·VG 등), 첨가물 등이 섞인 액상을 기화시켜 흡입하는 방식이다.

현행법상 합성·유사 니코틴 등으로 만든 액상전자담배 등은 현행법상 담배에 포함되지 않아 각종 규제와 과세 대상에서 빠져 있다. 특히 온라인 쇼핑몰이나 무인담배자판기에서도 판매할 수 있고, 청소년에게 팔아도 처벌받지 않는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들이 액상전자담배를 담배에 준해 규제한다.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고 향료 첨가를 금지하는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를 이미 마련한 것이다.

◆교사·학부모들 발견 어려워 = 문제는 액상전자담배가 기존 담배(궐련)와 같이 중독성이 있어 사실상 담배 대용품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들 제품은 세련된 디자인과 달콤한 향기로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냄새가 거의 없고 시계나 열쇠고리로 착각할 만한 모양으로 제작돼 이를 지도할 교사나 학부모들이 알아채기 힘든 실정이다.

청소년의 경우 여성가족부가 2011년 청소년보호법을 적용해 액상전자담배를 청소년 유해물로 지정했다. 청소년에게 판매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에 접근은 그리 어렵지 않다. 2024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서 담배 구매 용이성에 관한 물음에 청소년 70.5%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액상전자담배 자판기나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의 신분증을 도용해 구매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결국 진입 장벽이 낮은 액상전자담배가 청소년 흡연율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 사용이 증가했다는 정부 조사 결과도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일반 담배를 통한 청소년(중1~고3)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2023년 4.2%로 변화가 거의 없었다. 반면 액상전자담배 흡연율은 1.9%에서 3.1%로 늘었다.

특히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3명 중 1명(32%)은 액상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에 들어선 청소년의 60.3%는 현재 주로 일반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액상전자담배가 청소년들이 흡연을 시작하고 일반 담배로 넘어가는 관문”이라며 “담배사업법 통과와 별개로 교육당국이 나서 청소년들의 ‘건강할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 교육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도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정부가 액상전자담배 확산을 차단하는데 적극 나설 수 있도록 독려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 등장한 액상담배 지난 2월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위원들이 합성니코틴 사용 여부에 따른 액상형 전자담배를 비교하며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순수’ 물질 주장, 사실 아냐” = 더 큰 문제는 액상전자담배의 주원료인 합성니코틴을 둘러싼 유해성 논란이다.

업계는 합성니코틴 원액이 정제를 거쳐 천연니코틴 원액보다 덜 해롭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성훈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연구 용역 최종 결과에 따르면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성과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유해물질이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합성니코틴 원액에서 많은 유해물질이 검출되는 것은 니코틴 합성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반응물질과 유기용매를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보고서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다수 유해물질이 있다는 점을 들어 “연초니코틴과 동일하게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합성니코틴이) ‘순수’ 물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외국처럼 합성니코틴과 연초니코틴을 구별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앞서 세계보건기구(WHO)도 액상전자담배의 심각한 중독 위험과 유해성을 경고했다. 특히 WHO는 아동·청소년 등을 유인하는 마케팅 등으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단위의 강력한 규제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액상전자담배 등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우울·불안 증세를 겪을 위험이 커진다는 보고도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일이 아니다”며 “개정안이 표류하는 사이 지금도 10대 청소년들 폐에는 계속해서 화학물질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해성이 확인된 지금은 규제를 하느냐 마느냐를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면서 “지금 국회는 합성니코틴 규제 이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업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화학물질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차단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종마약 유통 통로 역할도 = 최근에는 청소년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액상전자담배로 위장한 신종마약까지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 접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법안들을 수년째 외면하는 국회를 향한 비판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최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전자담배를 이용해 합성대마로 대표되는 신종마약을 유통한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합성대마 압수 건수 5650건 중 액상전자담배(카트리지 충전용 액상 포함)가 3868건(68.4%)이나 됐다. 2022년의 경우 액상전자담배 비율이 61.0%였다. 특히 10대에게 압수한 합성대마 176건 가운데 138건(78.4%)이 전자담배를 이용하고 있었다.

국과수는 “액상전자담배 구매가 쉬워지면서 합성대마 시장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엔 담배처럼 흡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속칭 ‘브액’이라 불리는 액상전자담배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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