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탈당 수용하던 민주당 “개혁·도덕성 의심”에 ‘추가 징계’
정청래 긴급 진상조사 지시, 6시간 만에 ‘자진 탈당’
법사위원장·국정기획위 분과장 무게감 고려 공감대
이춘석 전 법사위원장의 자진 탈당을 수용하는 듯 했던 더불어민주당이 추가 징계 카드를 꺼냈다. 개혁입법의 관문인 국회 법사위원장과 국정기획위 경제분과장이라는 무게감에 걸맞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들은 “명확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거론되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탈당만으로 해결된 사안이 아니다. 죄질이 너무 나쁘다”고 입을 모았다.
국민적 지탄은 물론 범여권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야당과 시민단체 등의 날카로운 반응에 당황하는 눈치다. 자칫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주식 시장 내 불공정 해소는 물론 정청래 대표 체제의 ‘개혁 속도전’을 위협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5일 오전 ‘더팩트’ 보도로 주식 차명 거래 의혹이 제기되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2시간 반 만인 이날 오후 긴급 진상 조사 지시를 내렸다. 이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법 표결 후 기자들과 만났을 당시만 해도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주식 화면을 열어본 것은 잘못이라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지만, 타인 명의로 주식 계좌를 개설해서 차명 거래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당에서) 조사하면 밝혀질 것”이라며 탈당이 아닌 당에서 진상 조사를 받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던 이 의원이 이날 오후 8시쯤 정 대표에게 전화로 ‘당에 누를 끼쳐 죄송하다. 자진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정 대표는 이를 받아들였다. 긴급 진상조사 지시 6시간 만에 자진 탈당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본인이 자진 탈당을 하면 더 이상 당내 조사나 징계 등을 할 수 없는 만큼, 의혹에 대한 진상은 경찰의 철저한 수사로 밝혀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당을 나간 의원에 대한 당 차원의 진상조사 등이 어렵다는 입장은 당 안팎의 비판에 직면했다. 진보당은 “본회의장 주식 거래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인데, 주식 계좌의 주인은 오래된 보좌관이고 게다가 이 의원은 현재 국회 법사위원장”이라며 “주식 차명 거래는 엄연한 불법”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이춘석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사임과 자진 탈당으로 어물쩍 넘기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면서 “고위공직자의 꼼수 거래와 기강 해이를 방치한다면, 반부패 개혁을 외쳤던 정당으로서의 자격은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자진탈당이 정치적 꼬리자르기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당 안에서도 커졌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당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징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진탈당이 아닌 최고 징계인 제명을 명시하는 처분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국정기획위 관계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면서 “주식시장에서 어떤 불법거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대통령과 민주당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식 양도세 부과 등과 관련한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놓고 당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점도 추가 징계 목소리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실련은 이 의원에 대한 추가징계를 요구한 논평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고위공직자 주식·부동산 거래내역 신고제 도입을 공약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는 반부패 개혁을 약속했다”면서 “고위공직자의 거래내역을 사전에 신고함으로써 무분별한 거래를 차단하고 이해충돌을 예방하려는 데 있었는데 본인 명의가 아닌 타인 명의 계좌를 통해 거래하거나 자산을 관리한다면, 이러한 제도는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이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도적 구멍을 악용한 반복되는 공직기강 해이의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의원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법사위원장에는 추미애 의원이 선출됐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6일 페이스북에서 “법사위원장은 비상 상황인 만큼 일반 선발 원칙보다는 검찰개혁을 차질 없이 끌고 갈 수 있는 가장 노련하고 가장 경험 많은 분에게 위원장직을 요청드리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 취임 후 검찰·언론·사법개혁에 대한 속도전을 예고한 상황에서 법사위의 안정적 운영에 초점을 맞춘 인사를 고심한 결과로 풀이된다.
이명환 박준규 기자 m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