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철규 칼럼
부동산정책의 잘못된 우선순위와 코스피5000의 허상
‘불나면 그냥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칼럼을 쓰는 날 아침 한 조간신문에 실린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부동산정책에 대한 평소의 의문과 불만을 잘 표현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 14만551가구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비율은 2.8%(3884가구) 뿐이다. 검색해 보면 영구임대주택은 노태우정부 시절 주택 200만호 건설 정책에 포함되어 1992년까지 지어졌다. 이 사업이 중단된 이후 50년 임대아파트가 나왔는데 이 경우에도 스프링클러 설치 비중은 7.4%뿐이라 했다.
LH 관련자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담당자는 간이 스프링클러라도 설치하자는 사업에 따르는 예산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국민의 치명적인 위험을 막는 예산을 확보하는데 적극적이지 않을까?
또 다른 조사 결과와도 연결되었다. 통계청은 7월 29일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지하 반지하 옥탑방에 거주하는 가구수 통계가 실렸다. 전수조사로서는 최초로 공표됐다는 이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1월 기준으로 지하와 반지하에 거주하는 세대수는 39만8000가구(전체 가구수의 1.8%), 옥탑방에 거주하는 가구수는 3만6000가구(전체 가구수의 0.2%)다. 지하와 반지하가 있는 주택의 97.3%, 옥탑이 있는 주택의 90.6%가 서울 경기 인천에 몰려 있다.
2022년 8월 9일의 끔찍했던 일가족 참사를 왜 국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쉽게 잊어 버리는 것일까? 당시 서울시장은 10~20년에 걸쳐 지하와 반지하주택을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한 서울시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2022년 8월 당시 23만7619개였던 반지하주택은 2025년 5월 21만9876개다. 거의 3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7.5% 감소했을 뿐이다. 약속대로 모두 없애려면 30년이 걸려도 안된다는 얘기다. 노후주택의 자연 멸실률까지 고려하면 무엇을 하기는 하고 있는 것일까?
서민의 삶과 괴리돼 있는 부동산정책
“주택 보급률은 충분합니다.” 과거 정부의 한 국토부장관의 주장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때도 “제발 지하 반지하 옥탑방, 그리고 국토부가 규정하는 최소 거주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주택은 빼고 계산합시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던 기억이 있다.
‘서민경제’를 내세우지 않는 정부는 없지만 언제나 부동산정책의 관심은 ‘서민 삶의 질과 안전’에 있지 않았다. 매년 기록을 갱신하는 폭우와 폭염 속 쪽방촌 삶과 홈리스의 삶은 ‘선진(?)’ 한국의 부동산정책에서 최우선 순위를 차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선거에서도 부동산정책 공약은 늘 그렇듯 신도시, 용적률, 재개발이나 재건축 인허가 기간 단축이 우선 순위였다. 부동산정책을 둘러싼 모든 관심은 부동산의 자산가치에만 쏠려 있었다.
이번 정부의 대선공약에서 흥미로운 것은 자산시장의 구성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부동산 자산시장의 비중을 줄이고 주식과 채권시장의 비중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그래서 나온 대선공약이 ‘코스피5000’이다. 대선 전날에 비해 코스피가 20~30% 이상 오른 채 움직이고 있으니 정권교체의 효과라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또 한번 정책의 우선순위와 서민의 삶 간의 괴리가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국회의원들의 요구에 따라 한국예탁결제원이 내놓은 자료를 인용한 기사들을 찾아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내국인 주식 보유 총액 가운데 상위 1% 투자자들이 보유한 비중은 53%선이다. 그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보유주식 비중의 불평등은 급격하게 심해진다.
코스피 주식의 30% 이상이 외국인 지분이다. 최대 주주가 직접 소유하는 부분과 지배하는 부분을 포함해서 보면 대체로 50% 내외로 보아야 한다. 그 나머지가 소위 말하는 1400만 개인투자자 몫이다. 실제 사람수가 아니라 계좌수가 그렇다는 것이다. ‘큰 손’ 개미로의 집중도는 파악하기 어렵다.
자산시장정책의 우선순위 재조정해야
또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도 있겠다. 부가가치 기준으로 상장기업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추 10%선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낮은 비중의 일자리만 제공할 뿐이다. 상장기업 가운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월등히 높다. 서비스업의 비중을 반영할 수 없는 구조다. 이 서비스업의 핵심이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자영업에 속한다.
서민의 삶에 중요한 것은 부동산과 주식 같은 자산가격의 상승이 주는 ‘경제가 살아나는 느낌’이 아니다. 실질임금 수준과 생활에 필요한 실질임금을 구할 수 있는 일자리와 취업시간이다.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자산일 뿐이다. 그리고 자산시장과 서민의 일상 삶과의 관계는 부동산이나 주식이나 큰 차이가 없다. 자산시장 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마땅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