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일용직 체불예방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 신설

2025-08-08 13:00:01 게재

월 1회 임금 직접지급, 하루 단위 고용 건설일용근로자에게는 부적합 … “국토부 고시 바꾼 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해야”

건설현장의 임금체불 방지와 직접지급을 관철하기 위해 국회에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국토교통부 고시를 통해 공공공사에서 적용 중인 ‘임금 직접지급’ 제도를 민간공사로까지 확대하려는 취지다. 하지만 공공공사 현장에서 임금체불을 막으려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건설‘일용’근로자의 취업과 당일 임금수령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매일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건설일용근로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며 “건설일용근로자의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직업소개소를 통한 자생적 ‘임금 대위변제’를 제도화하고 직업소개소의 선불노무비 체불 위험성을 해소하기 위한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지난달 3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과 신영대·정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전국고용서비스협회(회장 이원장) 한국공인노무사회(회장 박기현) 소상공인연합회(회장 송치영)가 주관한 ‘건설일용근로자 임금체불 방지 제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폭염 속 건설현장 폭염특보 일주일째인 지난달 3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 에쓰오일 샤힌프로젝트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작업하고 있다.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경제학 박사)는 ‘건설일용근로자 임금체불 방지 방안 모색’ 발제에서 “건설 노동시장에는 월 1회 임금지급이 가능한 근로자와 당일 임금지급이 필요한 근로자가 공존한다”며 “자생적 당일 ‘임금 대위변제’를 제도화한다면 건설 분야 임금체불 방지를 완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금 대위변제’는 하루 단위로 고용하는 건설일용근로자의 임금을 직업소개소가 당일 현금을 지급하고 나중에 건설업체로부터 해당 ‘임금과 소개수수료’(선불노무비)를 수령하는 것을 말한다.

국토부는 2022년 임금체불을 막고 근로기준법의 임금 직접지급 원칙을 준수하겠다며 ‘전자조달시스템 등을 통한 공사대금의 청구 및 지급 등에 관한 고시’를 통해 공공공사에서 임금 대위변제를 금지시켰다. 직업소개소가 알선한 건설일용근로자에게도 건설사업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해 시장의 자생적인 관행인 임금 대위변제를 금지시켰다.

심 대표는 “건설근로자 유형에 따라 임금지급 주기에 따른 편차가 발생한다”며 “월 1회 임금지급이 가능한 건설근로자(건설기능인력)에게는 국토부 고시의 민간 확대 적용이 바람직하지만 ‘당일 임금지급’이 필요한 건설일용근로자에게는 불합리 또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일 임금 선 지급, 체불우려 해소 기여 = 전체 건설근로자 146만 중 113만~130만명 건설기능인력은 며칠에서 몇개월 단위로 고용되기 때문에 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한 월 1회 임금지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16만~33만명으로 추정되는 건설일용근로자는 매일 고용계약이 종료돼 당일 임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고 부적합하다는 이야기다.

심 대표는 “건설일용근로자의 경우 국토부 고시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아 편법과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에 건설일용근로자의 일자리 감소, 건설업체의 행정부담 증가와 구인 곤란, 직업소개소 사업 기반이 약화되고 결국 정부 부담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임금 대위변제는 당일 임금 선 지급을 통해 건설일용근로자의 체불 우려를 해소하고 건설업체의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완화하며 정부의 건설일용근로자에 대한 취업지원 및 체불·실업·노숙·범법 등의 예방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건설근로자공제회의 ‘2024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4년 건설기능인력의 구직경로는 팀장·반장·기능공 등 인맥이 64.4%로 2022년(74.9%)보다 10.5%p 줄었다. 반면 직업소개소 이용이 12.1%로 같은 기간(7.6%)보다 4.5%p 늘었다. 건설업체의 구인경로도 인맥 비중이 감소하고 직업소개소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다.

●체불경험, 직업소개소가 구직경로 인맥보다 절반 수준 = 또한 최근 1년 이내 임금체불 경험을 묻는 질문에 건설근로자 29.5%가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구직경로가 인맥인 경우가 34.0%인데 직업소개소는 16.9%로 절반에 그쳐 ‘임금 대위변제’의 임금체불 방지 효과로 해석된다. 직업소개소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건설근로자 71.3%가 ‘임금체불 없이 매일 일당을 받을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2017년 고용노동부 지침에도 일용근로자는 매일 근로관계가 단절되므로 종료한 시점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임금 대위변제로 당일 임금 지급으로 건설일용근로자의 임금체불 위험은 해소되지만 임금을 선 지급한 직업소개소의 선불노무비에 대한 체불 위험성이 발생한다.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이 필요한 이유다.

전국고용서비스협회에 따르면 2024년 5월 현재 건설업체 1203곳의 부도로 건설직종 직업소개소 8010곳 가운데 2005곳에서 602억원의 피해가 발생해 직업소개소 도산으로 이어져 증발한 일자리 수가 6만150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공공공사, 임금 대위변제 편법·위법한데도 묵인하는 상황 = 현재 공공공사에서 건설업체가 당일 임금을 직접 지급하려면 행정적 비용적 부담이 너무 커서 대부분은 금지된 직업소개소를 통한 임금 대위변제를 편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위법이 만연했으나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고용서비스협회가 올해 1월 건설일용근로자 105명, 건설업체관리자 53명, 직업소개사업자 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공공사 임금지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공사 하루 평균 건설일용근로자는 17.7명이고 이 가운데 직업소개소 알선이 13.8명으로 78.1%를 차지했다.

실제로 기존 임금 대위변제를 이용한다는 응답은 직업소개사업자 98.0%, 건설업체관리자 94.3%, 건설일용근로자 62.9%에 달해 위법이 만연했다. 건설일용근로자 92.4%가 ‘당일 임금지급 가능한 직업소개소 일자리를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건설일용근로자 임금지급 방법에 대해선 건설일용근로자 73.3%, 건설업체관리자 88.7%, 직업소개사업자 90.2%가 직업소개소를 통한 ‘임금 대위변제’ 적용을 꼽았다. ‘건설업체가 임금을 직접 지급한다’는 각각 21.9%, 7.5%, 5.9%에 그쳤다. 공공공사에서 국토부 고시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국토부 고시의 민간공사 확대 적용 시도에 대해서는 직업소개사업자 76.5%, 건설업체관리자 79.2%, 건설일용근로자 48.6%가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 도입 및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에 대해 각각 96.1%, 88.7%, 82.9%가 ‘찬성’했다.

●국토부 고시에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 조항 신설해야 = 심 대표는 건설일용근로자에게 당일 임금지급은 체불방지에 특효라며 체불방지를 위해 먼저 국토부 고시를 개정하고 임금 대위변제 제도를 마련한 뒤에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토부 고시에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 조항으로 ‘다만, 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이 불가피하게 직업소개 사업자와 약정을 맺고 임금지급을 위탁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임금 대위변제를 허용하되, 선지급될 임금 및 소개수수료(선불노무비)의 지급을 보증하는 보험증권을 발급받아 직업소개 사업자에게 제출해야 한다’를 추가하자는 거다.

심 대표는 그 내용으로 △당일 임금 위탁지급 계약, 대위변제 허용 △선불노무비 보증보험 마련 △보증보험료 공사원가에 반영 등을 제시했다.

심 대표는 “건설일용근로자의 취업지원 및 체불·실업 등의 예방을 위한 사회적 비용으로 정부가 보증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면서 “또 건설사업자와 직업소개사업자의 요건과 위반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건설일용근로자 임금체불 방지 제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전국고용서비스협회 제공

●체불 제도화, 일용노동자 보호 장치 = 이어진 토론에서 오성욱 전국고용서비스협회 평생교육원장은 “건설 일용노동시장을 활성화하고 구직자의 생활안정과 일자리 안정에 기여하는 측면에서 고용서비스 정책에도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김환주 대한전문건설협회 본부장은 “직업소개소 중심의 모델은 시장 안에서 이미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현실적으로 가능해 온 중요한 대안”이라며 “전문건설업체들이 조공이나 준기공 같은 일용근로자의 경우 직업소개소의 구인·행정 지원 역할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용근로자의 임금체불 방지를 위한 제도화는 중소규모 현장이나 단기 위주의 고용형태의 일용근로자 보호를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일 임금지급. 체불 불안 해소이자 생계의 기반 = 이진덕 도봉인력 대표는 “구인자인 건설업체는 공정에 따라 필요한 일용근로자를 고용하게 되고 그 노임을 당해 달에 결산해 그 다음달 15일( 30+15=45일 ), 또는 기성이 들어오는 다음 달 30일( 30+30=60일 ), 또는 발주처 정산 및 어음 등을 받아 2~3개월(30+60=90일 이상) 후 지급하는 방식( 유보임금 방식 )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정 날씨 현장여건 등의 변화와 근로자에게 부과된 4대 보험의 산정 및 원천징수 등 일용근로자도 상용근로자에 준하는 막대한 행정력과 비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건설일용근로자들은 대부분 소득 1, 2분위의 저소득자인 경우가 많아 짧게는 45일, 길게는 90일 이상의 유보임금을 견딜 수가 없다”면서 “건설공사의 특성 상 인건비 등은 미리 투입되고 그 기성은 3~6개월 후 지급되며 다단계 하도급을 거치면 공사비 증액이 없는 한 필연적인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때 ‘유보임금’에 대한 체불이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체불임금 해소의 핵심은 건설일용근로자는 반드시 당일 노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주는지는 두번째 문제”라며 “건설일용근로자가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더 많은 일자리, 그리고 당일 노임을 받을 수 있는 지금의 방식을 좀 더 발전시키고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윤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서강)는 “소개수수료 보험을 안정적으로 설계하고 보험료가 공사원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중소 건설업체의 부담을 고려해 초기 단계에서는 정부 직접 지원이나 세액공제 등 간접 지원방식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취약계층인 건설일용근로자에게 당일 임금지급은 체불 불안의 해소이자 생계의 기반”이라며 “임금 대위변제 제도화와 가칭 ‘선불노무비 지급보증보험’ 도입은 지속 가능한 상생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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