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온열질환을 예방하는 기이한 방법

2025-08-08 13:00:01 게재

지난 7월은 전국 평균 최고기온이 32.0℃로 역대 2번째였고 폭염일(33℃ 이상)도 14.5일로 역대 3번째에 해당하는 역대급이었다. 이런 더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밖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특히 옥외작업이 많은 건설 조선 물류 등 폭염 고위험사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작업을 강행해야 한다. 이런 사업장에서는 노동자가 온열질환에 걸리지 않도록 안전보건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고용노동부도 물, 냉방장치, 휴식(33℃ 이상에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보냉장구, 119신고의 ‘폭염안전 5대 기본수칙’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산업현장을 집중 점검·지도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회사는 보다 획기적인 방법으로 폭염에 대한 안전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근본적인 문제를 발본색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날씨 선선할 때 다른 현장에서 봅시다”

영미(가명)씨는 다른 현장에서 만난 민정(가명)씨의 소개로 8월에 건설현장에 취업했다. 현장의 안전관리자는 “보름 정도 일할 것 같다”며 아침 8시부터 안전교육을 받고 신호수로 일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일을 했더니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그래도 점심을 먹고 조금 쉬니 나은 것 같았다. 오후 작업은 1시 반부터였다. 햇빛이 장난이 아니다. 현기증이 느껴졌다. 안되겠다 싶어 안전관리자에게 잠깐만 쉬겠다고 했다. 땀이 바람에 씻기며 컨디션이 좀 돌아오고 있는데 현장소장이 원청사(도급인) 방침이라면서 많이 힘들면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이렇게 친절한 분이 있나.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다. 너무 더운 날이라 밖에서 일하다보면 그런 증세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영미씨도 오랜만에 일을 해서 그렇지, 너무 무리하지만 않으면 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친절했던 현장소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소장님, 진찰 잘 받았습니다.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네요. 영미씨, 오늘은 퇴근시간 다 됐으니까 현장으로 오지 말고 병원에서 바로 퇴근하세요.” 고마웠다. 내일부터는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현장소장이었다.

‘미안한데요. 날씨 선선할 때 다른 현장에서 봅시다. 여기는 한여름에 외부작업이라 힘들 것 같다. 하루치 일당은 저녁에 보낼 테니 본인 계좌번호 보내줘요.’

그렇게 영미씨는 해고됐다. 영미씨는 현장소장 말대로 다른 이야기 없이 계좌번호를 보냈다. 민정씨에게 연락했지만 “현장소장이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는 대답이었다. 신호수 업무는 다른 사람이 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잠깐 쉬고 병원에 다녀오라고 해서 갔던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회사는 영미씨와 근로계약서를 쓴 적이 없다고 했다. 근로계약서를 줬는데 영미씨가 쓰지 않고 병원으로 갔고, 그래서 영미씨를 고용한 적도 없고 해고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에 보자며 계좌번호를 달라고 했는데 아무 말 없이 계좌번호를 보내준 것은 서로 그만두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했다. 회사는 영미씨가 일용직이어서 더 근무하고 말 것도 없다고 했다.

폭염 안전사고 우려, 해고로 원천차단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은 맞지만, 회사가 근로계약서를 영미씨에게 줄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현장소장이 채용해서 안전교육도 시키고 오전에 일도 하고 병원에 가라고 해서 영미씨가 간 것도 모두 회사가 영미씨를 고용했기 때문이라 했다. 영미씨는 화해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배려를 받아 병원에 가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는 해 줄만큼 해줘서 화해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심문회의장에는 회사 사람은 나오지도 않았다.

노동위는 회사가 영미씨를 부당하게 해고했다고 판단했다. 영미씨는 일하고 싶었지만 회사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다. 해고할 때 그 이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주지도 않았다. 회사는 폭염 기간에 외부작업을 하는 영미씨를 산업재해 등 안전사고가 우려돼 계속 쓰지 않았다고 했다. 말 그대로 사고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을 해고를 통해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렇게 더운 때에 건강에 문제가 있는 노동자가 일하고 싶다고 일을 시킬 수는 없다. 그렇지만 회사는 영미씨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살펴보지도 않고 앞으로 혹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해고를 해서는 안된다.

박재형

중앙노동위원회

심판1과 조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