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사회 투명경영
여성 고용률 상승에도 성별임금격차는 OECD 1위
60대 저임금 일자리 늘어, 공정하고 투명한 보상체계는 기본 …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적 원칙부터 지켜져야
“고질적인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일이 중요해요. 혹자는 ‘이미 여성 고용률이 높은데 무슨 소리냐’라고 물을 수도 있죠. 실제로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꾸준히 늘고 있어요. 하지만 남녀 고용률 격차는 여전히 크고 최근 이 지표가 개선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60대 여성 고용률 상승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5일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고용연구본부 연구위원(경제학)은 이렇게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6월 현재 남성 고용률(15세 이상)은 71.2%, 여성은 56.2%로 남녀고용격차는 여전하다. 또한 여성 고령층 취업률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상반기 60대 이상 여성 취업자수는 1월 267만명에서 6월 323만3000명으로 약 56만3000명(21.1%)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다른 연령대 여성 취업자수 증가율(2~3%)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김 연구위원은 “60대 여성 고용률 상승은 표면적으로는 긍정적 지표로 보이지만 일자리 질 측면에서는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관리자나 임원급 여성이 늘기보다는 저임금 직종으로 집중되면서 성별임금격차 문제도 해소되기 어려운 구조가 쳇바퀴처럼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대한민국의 성별임금격차는 28.95%로 41개 회원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이는 OECD 평균(11.30%)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다. 일본의 성별임금격차는 대한민국보다 8.3%p 낮은 20.65%다. 성별임금격차 수치가 클수록 남녀간 임금 격차가 심하다는 의미다.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사회는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의 ‘여성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라세레나 로드맵(2019~2030)에서는 5대 행동 영역으로 △고임금 혹은 고성장 부문에서 여성의 채용 고용 유지 및 승진 촉진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여성의 차별 없는 양질의 고용 접근성 개선 등을 선정했다. 라세레나 로드맵은 2019년 칠레 라세레나에서 APEC 21개 회원국이 채택했다.
그러나 OECD 최악의 성별임금격차를 기록한 한국의 실질적인 개선 노력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12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APEC 여성경제회의’를 연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회의가 열리는 건 처음이지만, 정작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 집행은 미흡한 상황이다.
◆기업 내외 격차 원인 달라, 맞춤형 정책 필요 = 정권과 관계없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이 마련됐지만 좀처럼 개선 속도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성별임금격차는 여성의 결혼이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성별 직종 분리 등 구조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21대 대통령선거 10대 공약 중 하나로 ‘노동이 존중받고 모든 사람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내세웠다. 이를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기준지표 마련을 위한 임금분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선 후보 시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용평등 임금 공시제를 도입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개선해 가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제대로 시행되면 성별 나이 출신 등과 관계없이 같은 업무와 성과에 대해서는 동등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별임금격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성별임금격차를 단순히 남성과 여성, 성별 대립 구도로 볼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신 등 배경과 관계없이 일한 만큼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공정한 보상 체계가 확립될 때 모든 구성원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정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월간노동리뷰 7월호에 실린 ‘성별임금격차 완화를 위한 임금투명성 정책 도입’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기업 간 임금 격차가 크고 기업 내에서도 30대 후반부터 여성 임금 상승이 둔화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며 “기업 내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임금 투명성 정책과 같은 국가 차원의 차별금지 정책이 효과적”이라고 언급했다.
이 보고서는 남녀 간 임금 격차가 어디서 발생하는 원인이 기업 내부에 있는지, 아니면 기업 간 차이 때문인지를 분석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이용한 일원고정효과(개인차는 무시하고 회사별 차이만 두고 비교하는 방법) 분석에서는 2021년 유사한 능력을 가진 남녀 간 임금 격차의 약 2/3는 기업 내부에서, 약 1/3은 기업 간 차이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기업 내 성별 격차의 상당 부분이 기업 내에서 담당하는 업무나 책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어 공정하지 않은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같은 회사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비교했을 때도 남녀 임금차이가 있는지 추가로 분석(이원고정효과)을 실시했다.
그 결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남녀 간 임금격차의 원인 중 약 30%는 여성들이 임금 수준이 낮은 회사에 취업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었다. 또한 약 13%는 동일가치노동을 하면서도 여성이 더 적은 임금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서는 “기업 간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안으로 재택근무와 같은 유연한 근로시간 정책이나 출산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를 장려하는 가족 정책과 같은 조치가 효과적”이라며 “성별임금격차가 단순히 사용자가 주는 임금 액수에서만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격차뿐만 아니라 고용격차와 같이 노동시장 전반에서 발생하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도 함께 보여줄 수 있도록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교육격차 미미하지만 문제는 여전 = 사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는 성별임금격차를 이미 금지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성별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다. 또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성별임금격차 문제가 일어나고 있고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여성경제학회가 여가부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연구 ‘성별 임금격차의 현황과 요인 분석’ 보고서에서는 “성별 임금격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성별 교육격차가 대한민국의 경우 2000년대 초반 이후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속적으로 성별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라며 “근로자에게 업무를 분장하고, 책임 수준이 서로 다른 직무로 이동시키는 기업의 인사행정이 근로자의 업무 능력을 근거로 투명하게 이루어지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성별임금격차 = 남성과 여성 간의 임금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남성 임금 대비 여성 임금의 비율 또는 차이의 백분율로 표현한다. 한 예로 남성 중위임금(전체 임금을 크기 순으로 나열했을 때의 중간값)이 100만원, 여성 중위임금이 80만원이라면 성별임금격차는 20%다. 사회 전체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20만원 덜 받는다는 얘기다. 이 방식은 단순히 남성 전체와 여성 전체의 임금을 비교하는 ‘조정되지 않은 격차’에 근간을 둔다.
우리는 성별임금격차를 이해할 때 조정되지 않은 격차 외에도 조정된 격차 방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조정된 격차는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같은 회사 △같은 직급 △같은 경력의 남성과 여성 임금을 비교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통상 조정되지 않은 격차 방식보다 남녀성별임금 격차가 더 적게 나타난다. 조정된 격차가 더 현실에 근접하게 반영한 수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승진이나 업무 배치 등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은 통계적으로 완벽하게 포착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성별임금격차를 이해할 때 두 격차 모두 활용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