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더 센 민주당’의 함정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체제 출범 후 여야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신임 정 대표가 제1 야당을 아예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다. 정 대표는 의례적인 당선 후 야당 예방에서도 국민의힘은 빼버렸다. 게다가 틈만 나면 “10번 100번 해산해야 할 정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각종 입법에 대해서도 제1 야당과의 조율에는 관심이 없다. 이미 방송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고,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도 밀어붙일 태세다. 검찰·언론·사법개혁도 폭풍처럼 몰아쳐 추석 전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한다.
정 대표는 지금 대한민국이 ‘내란이 지속되고 있는 상태’로 본다고 한다. 당 대표실 슬로건도 ‘다시 뛰는 대한민국’에서 ‘내란세력 척결’로 바꿔버렸다. 정 대표의 강경노선은 전쟁통에 적과는 악수할 수 없다는 나름의 결기인 셈이다.
당원에 가까이 갈수록 국민과 멀어지는 역설
집권여당이면서 마치 야당처럼 질주하는 정 대표체제의 민주당을 보노라면 조금 아슬아슬한 느낌이 든다. 촛불항쟁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뒷배로 출범했지만 그토록 경멸했던 적폐세력에게 5년 만에 정권을 헌납한 문재인 시절의 민주당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적폐청산’이 ‘내란척결’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게 뭐가 있나 싶을 정도다.
사실 이재명정부의 지지기반이 문재인정부보다 더 단단한 것도 아니다. 이 대통령 지지도가 60%대 고공행진 중이기는 하지만 여권 스스로가 일궈낸 성적표라고 보기 어렵다. 이 대통령의 실용노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됐겠지만 그것 이상으로 ‘윤석열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에 힘입은 바 크다.
정 대표는 자신의 역할을 ‘배드캅(Bad Cop)’으로 규정하고 있는 모양이다. 정 대표는 전당대회 내내 “싸움은 제가 할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시라” “궂은 일, 험한 일, 싸울 일은 제가 하고 협치 통합 꽃과 열매는 이재명 대통령 공으로 돌려드리겠다”고 했다. 자신이 악역을 맡을 테니 이 대통령은 양지만 걸으라는 식이다.
그러면 국민도 대통령과 당대표의 엇갈린 행보를 ‘배드캅’ ‘굿캅’의 역할분담으로 받아들일까. ‘글쎄올시다’이다. 아마 민주당 지지층을 제외한 상당수는 ‘무엇이 당의 본색인지’ 물을 것 같다. 취임 18일 만에 야당 대표를 만난 이 대통령이 통합행보가 진심인지, 아니면 야당과 악수도 않겠다는 정 대표가 본심인지를. 개중에는 ‘이 대통령의 통합·협치·실용주의는 결국 구두선(口頭禪)’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 대표가 내세우는 ‘당원중심주의’도 몰역사적이자 탈대중적이라고 지적한다. 1950~1960년대의 정당의 전성기 시대 산물이지만 강성당원들의 의사를 과다하게 대표하면서 선거에서 지는 일이 잦아진 후 지금은 거의 용도폐기된 노선이라는 것이다.
온 나라가 진영으로 갈리고 극단적 주장이 더 기승을 부리는 우리 현실에서 당원중심주의의 위험은 더 커졌다. 당원에게 가까이 갈수록 국민으로부터 멀어지는 역설도 현실이 된지 오래다. 실제 사례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전당대회 중인데도 “윤 어게인”을 외치는 극우유튜버들에 휘둘리며 매일 지지도를 까먹고 있는 국민의힘이 대표적이다. 팬덤정치의 단맛을 탐닉하다가 끝내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문재인 민주당의 교훈도 빼놓을 수 없겠다.
‘경멸의 리더십’이 선거에서 선택받은 전례 없어
이제 10개월여 후면 지방선거다. 이 선거에서 여권이 받아들 성적표는 이재명정부의 국정운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재명정부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우선 챙겨야 할 정치일정인 셈이다. 그러면 정 대표식 ‘더 센 민주당’ 노선이 선거에 도움이 될까.
정 대표측은 ‘개혁의 골든타임’을 얘기하지만 ‘폭풍처럼 몰아친다’고 개혁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설익은 개혁이 역풍을 맞은 적은 더 많았다. 국민의힘이 107석의 소수라지만 민주당 또한 80여석 소수의석으로 집권여당의 폭주를 막아낸 적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같은 야당 부재의 시대에 집권여당의 독주는 오히려 유권자의 견제심리만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정 대표와 민주당이 진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6.3 탄핵대선 득표율이다. 정 대표가 패싱한 국민의힘(김문수, 41.15%)과 개혁신당(이준석, 8.34%)의 합산득표율은 민주당(이재명, 49.42%)의 그것보다 더 높았다. 막상 선거는 만만찮은 승부라는 얘기다. ‘경멸의 리더십’ ‘오만의 리더십’이 선거에서 선택받은 전례는 없다. 정 대표의 ‘더 센 민주당’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다.
남봉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