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유류세 인하 조치 종료 고심하는 정부

2025-08-11 13:00:01 게재

근원물가 2.0%대 달성, 국제유가 하락 전망에 무게

전체 물가는 안정적이지만 먹거리물가 상승세 부담

정부가 이달 말까지로 예정된 유류세 인하조치 연장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유류세 인하조치는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4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세수확보를 고려하면 더 이상 연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 방향 역시 윤석열정부의 감세정책을 복구하고 세수확보에 무게를 뒀다.

최근 국제 유가가 안정세에 접어들고, 근원물가도 2%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정부의 이런 흐름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최근 폭염·폭우로 먹거리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장바구니물가가 심상찮은 상황에서 휘발유 가격마저 오르면 서민생활에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어서다.

휘발유가격 또 오를까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동반 상승한 가운데 3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내주 연장 여부 결정 =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오는 31일로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된다. 조치를 연장하려면 국무회의를 열고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 등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최근 국제유가 동향과 물가 등을 종합 고려하며 연장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아직은 여장 여부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며 “대내외 요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새 정부 출범 첫 달인 지난 6월로 유류세 인하 조치는 종료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이란과 이스라엘의 지정학적 갈등이 고조하는 등 중동 정세가 불확실해지자 결국 인하조치를 연장했다. 당시 정부 안팎에서는 세입여건을 고려해 상반기까지만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이어가고 하반기에는 이를 종료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하지만 당시 국제정서 등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셈이다.

◆석유류 가격은 안정세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폭염·폭우로 인해 채소류 등 물가는 뛰었지만, 석유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0% 내렸다. 6월(0.3% 상승) 이후 한 달 만에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1%)을 밑돈 수치이기도 하다. 식료품과 석유류 등 공급 측 영향이 큰 부분을 제외하고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2.0% 올라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치를 달성했다.

국제유가는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에 반영된다. 최근 국제유가는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기준 배럴당 70달러 수준을 밑돌며 이란과 이스라엘 사태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가 오는 9월 증산에 나설 가능성 등 여러 요인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국제유가 흐름만 본다면 유류세 인하 조치가 종료될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세입여건은 ‘일몰’에 무게 = 정부는 물가도 관리해야 하지만 재정의 근간이 되는 세입 역시 염두에 둬야 한다. 정부로서는 매번 유류세 인하조치 연장 결정을 앞두고 물가관리와 세입확충이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특히 유류세 인하는 코로나19 상황인 지난 2021년 11월 첫 시행된 이후 16차례나 일몰이 연장되며 4년 넘게 이어졌다. 매년 세수를 압박하는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약 31조원 가량의 세수 부족이 있었던 지난해에도 유류세 인하 조치를 이어간 탓에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덜 걷혔다. 지난해 걷힌 교통·에너지·환경세는 11조4000억원이었다. 예산상 계획(15조3000억원)보다 3조9000억원이 부족한 것으로 오차율은 34.6%에 달했다. 전체 국세(-9.1%)는 물론 법인세(-24.2%), 소득세(-7.1%) 등 주요 세목보다 그 폭이 더 컸다.

올해도 유류세 인하를 이어가게 된다면, 세수 감소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10조3000억원 규모의 세입 경정(감액)을 결정했다. 이를 통해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본예산(15조1000억원)대비 7.3%(1조1000억원) 가량 줄어든 14조원 가량이 걷힐 것이라고 목표를 수정했다. 지난 6월까지 국세수입을 보면 교통·에너지·환경세는 총 6조2000억원이 걷혔고, 아직 진도율은 44.5%로 최근 5년 평균(50.0%)에 미치지 못한다. 정부로서는 하반기에는 유류세를 정상화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세수를 추계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변수는 먹거리 물가 = 다만 정부의 유류세 조치 결정을 코 앞에 두고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국제유가 흐름을 반영해 하락세였던 석유류 소비자가격은 최근 2주간 오름세로 반전됐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집계에 따르면 8월 첫째 주(3~7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669.9원으로 전주보다 2.2원 상승했다. 2주 연속 상승세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742.3원으로 가장 높았다. 전주 대비 4.7원 올랐다. 더 큰 변수는 최근 먹거리 물가 상승세가 심상찮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의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지수는 125.75(2020년=100)이다. 작년 같은 달에 비해 3.5% 상승했다. 지난해 7월(3.6%) 이후 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5월까지 2.0~3.0%를 유지해오다가 최근 2개월 연속 3%대 중반을 나타내고 있다. 폭염·폭우 등 이상기온 현상에 가공식품 출고가격까지 줄줄이 인상된 여파다.

특히 서민들의 밥상에 자주 오르는 조기(13.4%) 고등어(12.6%) 쌀(7.6%) 라면(6.5%) 등의 오름세가 심상찮다. 당분간 폭염이 이어질 기세여서 다른 채소·과일류의 작황도 부진해 먹거리 물가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 하반기에는 지하철·전기·상수도 요금 등 그동안 억눌러왔던 공공요금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 목표치인 2% 수준을 이어가고 있지만 서민생활과 직결된 체감물가는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제유가 흐름과 전반적인 물가상황, 최근의 먹거리 물가 변수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류세 연장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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