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장 리포트

이민자에 대한 ‘법의 지배’가 사라지고 있다

2025-08-12 13:00:03 게재

“미국이 범죄자와 약탈자들의 침략을 받고 있다. 그들을 몰아내는 데 여러분이 필요하다.” “조국을 수호하라.”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모집 공고에 나온 문구들이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ICE 요원 채용 발표에서 “지금은 우리나라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이다. 국가가 여러분을 부르고 있다”며 ICE 지원을 독려했다.

2차대전 당시 징병 포스터와 유사한 문구와 디자인을 사용한 ICE 채용 광고는 ‘침략자’에 맞서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등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구태의연한 방식을 동원해 ICE 요원 1만명 채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대적인 이민단속과 연간 100만명 추방 목표를 세운 트럼프정부 출범 이후 지난 반년 동안 실제 추방자수는 약 15만명으로 집계된다. 이는 하루 평균 약 800명 수준으로 이 속도로는 트럼프정부의 목표에 한참 못 미칠 전망이다. 따라서 추방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나온 것이 이민단속요원 1만명 증원이다.

ICE, 연방 법 집행기관 중 가장 많은 예산 집행

지난달 트럼프가 서명한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은 저소득층 장애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예산은 대폭 줄이면서 국경보안 및 이민단속 예산은 1700억달러로 확대했다. ICE는 이 중 765억달러 이상을 받는데 이는 이전 예산의 거의 10배 수준이다.

이로써 ICE는 연방수사국(FBI)과 마약단속국(DEA)을 비롯한 연방 법 집행기관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 되었다. 이 예산 중 약 450억달러를 이민자 구금시설 확충에, 그리고 거의 300억달러를 단속 요원 신규 채용에 사용할 예정이다.

예산이 증액된 ICE는 대대적인 물량 공세를 퍼붓고 있다. 신규 채용 시 최대 5만달러(한화 약 7000만원)의 채용계약 보너스, 6만달러의 학자금 대출 상환 지원과 삭감, 상당한 초과근무수당과 퇴직금 혜택 등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지원 자격에 대한 제한도 없앴다. 지금까지 40세 미만이었던 지원자의 나이 제한도 없애고 대학 졸업장도 필요없다고 발표했다.

8월 5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체포한 이민자를 신속하게 추방하면 추방 한건 당 최대 2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했다가 몇시간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보너스 인센티브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관계자에게 문의하자마자 바로 ‘아직 상부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취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현실화된다면 구금된 이민자의 법원 절차가 끝나기도 전에 추방하려는 불법적인 시도가 더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채용기준 완화와 제대로 된 검증절차 없이 진행되는 ICE의 급속한 증원이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이슨 하우저 전 ICE 수석비서관은 정확한 검증과 훈련이 없다면 9.11 이후 국경순찰대의 급속한 증원의 결과 나타난 것처럼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요원들의 인권침해 및 범죄사건 연루가 급증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전문교육을 마친 요원을 투입하려면 최소 3~4년은 걸릴 것”이라며 “그전까지는 민간 용역업체, 주방위군, 연방 법 집행기관 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안보 전문가 가렛 그래프는 특히 1월부터 ICE가 추구해 온 전술 - 비밀경찰처럼 복면을 쓰고 누구도 막을 수 없이 거칠게 불법행위를 하는 것 - 에 매료된 이들의 지원이 급증할 위험이 있다면서 그런 사람들은 특히나 더 ICE 요원이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라고 경고한다.

연방재난관리청(FEMA) 직원들을 ICE 신규 채용 업무 지원에 배치하겠다는 발표도 나왔다. 트럼프정부가 재난 대응에 대한 연방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주정부로 책임과 권한을 옮기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미 약 2000명의 FEMA 인력이 줄어든 상태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곧 시작되는 허리케인 시즌 대응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지만 지난달 300명가량 인명 피해를 낸 텍사스 지역 폭우에서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급작스런 자연재해가 더 빈번해지고 있는 가운데 그나마 남아 있는 FEMA인력을 ICE 업무 지원으로 빼돌리는 것는 적절치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단속요원 증원하면서 이민판사는 해고

동시에 트럼프정부는 추방재판 등 적법절차를 통해 이민자를 추방하는 시스템을 축소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민법원 판사들을 정당한 사유없이 해고하고 있다. 트럼프 취임 전 약 700명이었던 이민판사 수는 현재 약 600명으로 줄어들었다.

350만건이 넘는 추방 케이스 적체를 줄이기 위해 최근 연방의회가 이민판사 수를 800명까지 늘리는 것을 허용했지만 정부는 도리어 판사 숫자를 줄이고 있다. 트럼프행정부가 전례 없는 수의 이민자를 체포, 구금 및 추방하는 와중에 이의 적법성 여부를 결정하는 이민판사 수는 점점 더 줄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연방이민법이 보장하는 법원 절차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사를 수차례 밝혀왔다. 트럼프는 “모든 사람에게 재판을 허용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하려면 과장하지 않고 200년이 걸린다”면서 추방 대상 난민과 이민자들을 모두 내보내려면 법 절차를 따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해왔다.

실제 지금 이민법원에서는 적법절차를 무시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적체된 추방재판에 대한 트럼프정부의 해법은 판사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난민신청 사건을 신속히 거부하라는 압력을 판사들에게 넣고 있다. 지난 4월 연방법무부는 난민신청 사유가 불충분해 보이면 재판없이 신청을 기각하고 추방명령을 내리라는 새 지침을 하달했다. 이민판사는 독립적으로 추방 여부를 결정할 권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 소속 일반판사와 달리 법무부 소속이기 때문에 이 정책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법무부 지침은 난민 신청자가 자신의 주장을 증언할 수 있는 재판 기회를 박탈하라는 것이다. 뉴욕 로스쿨 이민법 교수인 레니 벤슨은 “이민판사는 독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하며 법에 따라 난민신청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제출, 보충 및 증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면서 트럼프정부는 이를 부정함으로써 법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고 추방 성과를 올리는 데만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ICE는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법원에까지 복면을 하고 들어와 영장없이 사람들을 잡아가고 있다. 최근 법원 출두서를 받고 뉴욕 이민법원에 출석했다가 ICE에게 체포된 한국유학생 고연수씨 경우가 그 단적인 경우다. 천만다행으로 구금 나흘 만에 풀려났지만 아무런 범죄기록이 없는 고작 스무살 어린 학생조차 ICE 요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체포된 사건은 이민자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민판사들 “‘법의 지배’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정부에 의해 해고된 이민판사들이 조심스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무 설명도 없이 갑자기 이메일을 통해 해고된 이민판사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 모두가 지금 이민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면서, 추방 집행이 우선순위가 되면서 정부의 예산 집행이 단속에만 쓰여지고 추방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를 공격하는 등 ‘법의 지배’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는 미국이 적법절차 원칙과 사법정의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위태로운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경고했다.

판사들은 “오늘 이민자에게 적법절차가 부정되는 것을 지켜만 본다면 내일 그 누구의 적법절차가 부정당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이민자뿐 아니라 모든 미국 시민들이 법의 지배와 적법절차 원칙이 침해되는 현 상황을 염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수경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