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교육부장관이 기억해야 할 ‘실패의 교훈들’

2025-08-12 13:00:07 게재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의외의 곳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배포 2주 만에 학원업종이 매출 증가율 33.3%로 전 업종 중 1위를 기록한 것이다. 생활지원 명목의 정부지원금이 결국 사교육 시장을 더욱 키운 셈이 됐다. 이보다 공교육 실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또 있을까. 학부모들은 여유자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사교육비부터 늘린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낙마 후 후임 장관 인선이 한창이다. 차기 교육부 장관이 누구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직전 정부들이 교육정책에서 반복해온 뼈아픈 실패의 교훈들이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 공교육 붕괴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성급함이 불러온 참사, AIDT의 교훈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이 밀어붙인 AI디지털교과서(AIDT) 정책을 보자. 취지는 나쁘지 않았다. AI 기술을 활용해 개별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학부모와 현장교사들의 거센 반발, 막대한 예산 부담, 교육현장의 혼란만 가중됐을 뿐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첫째,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 교사·학생·학부모 등 실제 교육주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밀어붙였다. 둘째,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전국 도입을 추진했다. 실증 데이터도 부족했고 부작용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다. 셋째, 법적 근거마저 미비했다. 국회가 AIDT의 법적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했는데도 일부 지역에 도입을 강행했다. 연간 수천억원이 투입될 대규모 사업치고는 너무나 허술한 준비였다.

문재인정부가 설계하고 현재까지 추진 중인 고교학점제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대학처럼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하게 하는 제도다. 획일적 교육을 탈피하겠다는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역과 학교 간 격차도 문제다. 충분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는 대도시 학교와 그렇지 못한 농어촌 학교 간 교육여건 차이가 크다. 교사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다양한 과목 개설을 위해서는 교사 증원과 시설 확충이 필수인데 실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교사들의 업무 부담만 늘어났다. 복잡한 시간표 관리, 미이수자 보완지도 등으로 교육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AIDT와 고교학점제 실패에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현장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부족했다. 정책 당국자들은 자신들만의 논리로 정책을 설계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둘째, 제도와 인프라 준비가 미비했다. 거창한 구상에 비해 실제 운영을 뒷받침할 교사·시설·예산지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셋째, 정책효과에 대한 실증적 검증이 없었다.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정작 효과가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정책 일관성도 문제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도 뒤바뀌면서 현장 혼란만 가중됐다. 기존 제도와의 연계성도 고려하지 않아 입시·내신 체계와 충돌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우려스럽다. 지방 균형발전과 대학 서열 완화라는 취지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현실성이 의문이다. 서울대 한 곳이 연간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데, 지방 9개 거점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연간 3조~8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행 고등교육 예산의 절반 이상이다. 정책효과도 의문이다. 오히려 ‘서울대 10개’라는 구호 자체가 대학 서열주의를 더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

과거 실패 되풀이하지 않을 지혜와 용기 필요

차기 교육부 장관은 이런 실패의 교훈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첫째, 어떤 정책이든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교사·학생·학부모 등 교육주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둘째, 단계적·실증적 접근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을 통해 효과를 검증한 뒤 점진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셋째, 정책 취지에 걸맞은 실질적 인프라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구호만 요란하고 실제 지원은 부족하면 현장만 혼란스러워진다.

무엇보다 교육의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려한 정책 포장지보다는 학생들이 제대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공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교육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민생지원금마저 사교육비로 쓰이는 게 현실이다. 차기 교육부 장관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지혜와 용기가 절실하다.

김기수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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