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속 가뭄…극한기상에 물관리 체계 한계
‘통합물관리 2기’로 도약하기 위한 대책 필요 … 단일 재해 중심 재난관리 체제에서 복합재난 대응으로
‘폭우-폭염-가뭄’. 최근 극한 기상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올여름 전국 곳곳이 기록적인 폭우로 몸살을 앓았지만 강원도 강릉은 가뭄에 시달리는 중이다. 지난 12일 강릉 가뭄 단계는 ‘경계’로 격상됐고 14일부터 제한급수에 들어갔다. 강릉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최근 6개월 강수량(371.6㎜)은 평년대비 54.9%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17일 오전 2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년은 지난 30년간 기후의 평균적 상태다.
14일 변영화 한국기후변화학회 부회장은 “최근 극한 기상현상은 단순한 고온이나 강수가 아닌 복합적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폭염은 고온과 건조가 복합적으로 결합된 현상이고, 폭우는 간헐적이지만 집중적으로 내리는 유형으로 변하고 있어 지역별로 극과 극의 기상현상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후변화로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은 가운데 북쪽 한랭기단이 남하하면서 북태평양고기압을 만나 ‘치고 빠지는 것’과 같은 짧은 시간 집중적으로 퍼붓는 형태의 강수 유형이 나타난다”며 “북쪽 한랭기단은 빠르게 움직여 금세 빠져나가지만 북태평양고기압은 계속 머무르기 때문에 비가 온 직후 고온 건조해진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5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 이래로 많은 극한기상 현상의 변화가 나타났다. 극한 저온 현상은 감소하고 극한 고온 현상은 증가한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호우가 빈번해지며 이 변화의 일부는 인간 활동과 연관된다고 알려진다.
실제로 미국기상학회 회보(BAMS)에 실린 논문 ‘2020년 여름 한국의 연속적 폭염-폭우 극한현상에 대한 인간의 기여(Human Contribution to the 2020 Summer Successive Hot-Wet Extremes in South Korea)’에 따르면, 온실가스 증가가 이러한 극한 기상 위험도를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다중 기후모델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6월 폭염의 경우 인간 활동 영향으로 발생 확률이 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반면 7~8월 집중호우의 경우 기후변화 영향이 감지되지만 개별 사례의 정량적 분석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폭염의 경우 온실가스 영향을 50~60% 수준으로 정량화할 수 있지만, 강수 유형 변화는 더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는 기후변화가 단일 극한 기상이 아닌 연속적 복합 재해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변 부회장은 “2018년 폭염처럼 강한 신호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2019년 태풍 등 개별 사례에서는 온실가스 영향을 정량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개별 분석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례를 종합한 분석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명확한 유형이 확인되고 있어 전반적으로 온실가스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가뭄 심화, 기반시설 추가 피해 등 연쇄적 영향 = 문제는 이러한 극한 기상 현상이 더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국제학술지 ‘수문학저널(Journal of Hydrology)’에 실린 논문 ‘RCP 8.5 기후변화 시나리오 하에서 2100년까지 한국의 가뭄 예측(Drought prediction till 2100 under RCP 8.5 climate change scenarios for Korea)’에 따르면, 미래 대한민국 가뭄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연구진은 지역기후모델인 ‘해들리 센터 전지구 환경모델 3세대(HadGEM3-RA)’을 활용해 2014년부터 2100년까지 87년간의 가뭄을 예측했다. RCP 8.5 시나리오는 온실가스 배출이 현재 수준으로 지속된다고 가정한다.
이 논문에 따르면 대한민국 동북권(G3)에서 2027년 평균 강도(EDI) -2.85의 극심한 가뭄이 예상된다. 또한 향후 가뭄 주기는 6.6년으로, 최고 강도는 약간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EDI는 가뭄의 심각성을 측정하는 지수다. 음수로 갈수록 가뭄이 심화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가뭄이 지구온난화와 결합하면 더 큰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4일 전만식 강원연구원 환경연구부 연구위원은 “과거와 달리 겨울에 눈이 적게 내리면서 물 확보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강원 영동지역의 경우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기반시설, 이른바 ‘물그릇’이 적다 보니 가뭄으로 인한 물부족 문제가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원 영동지역은 급경사에 강유역이 짧은 특성상 유속이 빨라 비가 와도 동해로 금세 물이 흘러나간다.
전 연구위원은 “물 관련 업무가 상수도 하천 농업기반 등으로 나눠져 있다 보니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통합적인 접근이 어렵다”며 “지역 차원에서 협의체를 구성해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환경연구원의 ‘2024 극한기후영향 보고서’에서도 “폭염이 가뭄을 심화시키고, 그 이후 발생한 폭우가 약화된 토양과 농작물, 기반시설에 추가 피해를 발생시키는 연쇄적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단일 재해 중심의 재난관리시스템으로는 복합적 극한기상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회복력 있는 기반시설 구축과 장기적 복구 계획 수립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깊어지는 물갈등, 4대강 논란도 재점화 = 이처럼 극한 기상으로 인한 물 문제가 심화하면서 종전 물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요구가 커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시절 수질과 수량을 통합하는 ‘통합물관리’가 어렵게 이뤄졌지만 실제 정책 효과를 현실화할 ‘화학적인 결합’은 아직도 요원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농업용수 발전용수 공업용수 등을 서로 다른 부처에서 관리하면서 정책 간 연계 부족은 여전하다는 비판과 국가물관리위원회 역할론 등 논란도 계속된다.
한정애 전 환경부 장관은 6월 국회에서 열린 ‘통합물관리 향상을 위한 법·제도적 개선 방안’ 국회물포럼 토론회에서 ”기후위기 시대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있어 물 문제는 핵심 사안“이라며 ”물관리 일원화 2기로 도약하기 위해 현행법을 재점검하고 실질적인 개선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를 필두로 4대강사업에 대한 찬반 논쟁도 재연되고 있다. 18일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4대강 재자연화를 촉구하며 이재명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은 “13일 4대강 재자연화라는 이재명 대통령 공약 기조에 맞춰 ‘4대강 자연성 회복’이 국정과제로 발표됐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예산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며 “이에 대해 이재명정부의 4대강 자연성 회복 정책 추진 의지에 대한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4대강 자연성 회복은 우리나라의 제대로 된 물정책을 추진하는 첫걸음”이라며 “이재명정부의 4대강 자연성 회복은 윤석열정부에 이뤄진 물정책을 청산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강사업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댐 등까지 포함하면 2012년까지) 이명박정부가 예산 22조2000억원을 들여 추진한 사업이다. 4대강 바닥을 준설하고 16개 보를 설치했다. 사업 전부터 사회적 반발이 거셌던 4대강사업은 작업이 끝난 뒤에도 계속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4대강사업에 대한 평가를 했고 결과도 정권에 따라 달라졌다. 서로 정쟁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면 ‘적폐청산’ ‘정치보복’ 등을 거론하며 날을 세웠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