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면기 칼럼
광복 80년만큼 깊이 새겨야 할 분단 80년 의미
2025년의 광복절은 몇 가지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정부와 독립운동 단체가 역사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기념식을 열던 볼썽사나운 일이 재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권교체 이후 독립 광복의 의미를 다시 살린 결과다. 그러나 다른 한편 광복의 햇수가 쌓이는 만큼 분단이 길고 깊어간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분단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냉전적 사고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각별히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평화가 위태로울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위험에 직면해야 했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유무상통의 정신으로 평화와 상생공존, 공동성장의 길로 나아갈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나아가 이 대통령은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선제적 도발도 배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역대 대통령이 광복절마다 통일문제를 언급해 오기는 했지만 분단체제 자체를 극복 대상으로 지목하고 그 전략적 방향과 원칙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세계가 인정하듯 지난 80년 한국은 갖가지 어려움과 장애를 뚫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선진민주국가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단극복이라는 과제는 첫발조차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년 보수정권은 한미동맹이나 북한붕괴 등에 기대어 분단을 청산 아닌 관리해가면 되는 문제로 생각했고,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했던 진보정권은 안팎의 현실적 장벽을 넘지 못하고 보수세력의 강경노선에 빌미를 주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 이런 흔들림 속에 국민들에게 분단은 해소해 나가기 어려운, 익숙한 숙명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심리적 좌절을 파고든 것이 소위 뉴라이트다.
뉴라이트가 부른 역사의 불시착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기 ‘새로운 보수’를 표방하고 등장한 뉴라이트는 그 후 박정희식 권위주의와 반공주의를 질서와 경제성장이라는 신화로 포장하며, 미국 일본에 부종하는 사대주의를 부추겨 왔다. 근현대사를 왜곡하면서 식민지근대화론과 건국절 시비, 이승만 박정희 우상화 등 ‘역사전쟁’을 도발하고,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친일사관 전파에도 공을 들였다.
윤석열정권의 등장은 뉴라이트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실천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보수언론, 일부 극우 기독교 세력과 결탁하며 세력을 확장해온 뉴라이트는 권력과 학술기관 핵심에 포진하고 검찰, 보수언론과 함께 공고한 권력블럭을 형성한 것이다. 힘을 가진 이들은 ‘종북’ ‘빨갱이’라는 선정적 담론으로 홍범도나 김 구 등의 독립운동가들을 공산주의자나 테러리스트로 매도했다.
완고한 이념적 이분법, 반공주의를 유포하면서 정부 비판을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같은 전체주의적 행태는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 없었고, 뉴라이트적 사고에 중독되었던 권력집단은 결국 12.3 비상계엄으로 스스로 명운을 재촉했다.
이 대통령의 이번 경축사를 적극 환영하는 다른 한편에서 이번 경축사 또한 한 차례의 선언적 절차에 그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떨치지 않을 수 없다. ‘리박스쿨’의 예에서 보듯 뉴라이트 세력이 아직도 우리 사회 도처에서 여전히 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처럼 분단체제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게다가 과학기술혁명과 기후위기 등에 써야 할 자원을 분산시키고,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도 분단체제의 위험성을 가중하고 있다. 남북이 충돌할 경우의 막대한 기회비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
대통령이 지적했듯 남북한 간의 경쟁을 부정하지 않되 협력을 우선하는 규범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 연구자의 말처럼 한 사회의 평균적인 감수성이 변화하려면 새로운 지식이 사회 다수에게 체화되어야 한다. 지금은 작은 성과와 장애에 흔들리지 않고 평화에 대한 장기적 기획으로 남북관계를 수렴해 가는 그런 전략문화, 전략사상이 필요한 시간이다.
지금은 ‘사상’의 창신이 필요한 시간
“대한 황제의 지위를 폐하고… 마침내 피를 흘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역사의 붓을 잡을 자들이 이를 어떻게 평론하겠는가.” 1907년 7월 대한매일신보가 고종의 강제퇴위에 남긴 소회다. 일제의 삼엄한 검열 속에 후대를 위해 전하려는 고뇌어린 절규가 들려오는 듯하다.
광복 100년이 눈앞이다. 2045년 광복절에는 분단 100년을 고통스럽게 소환하지 않았으면 한다. 흩어진 국민감정과 현실 지형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작은 걸음’부터 분단극복의 토대를 마련해 가는 것, 그것이 이재명정부에 거는 국민적 기대다. 낡은 사상으로 새로운 현실을 감당할 수는 없다. 오늘 ‘역사의 붓을 잡은 자들’ 역시 미래의 도전을 맞이할 기풍과 사상을 발굴해 가는 데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