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터져도 전남도 인권헌장 제정 ‘뒷전’

2025-08-19 13:00:06 게재

올해 달랑 한차례 회의만

이미지 실추에도 ‘무관심’

전남도가 벽돌공장 이주민 노동자 인권 침해 사건 등으로 지역 이미지가 실추되는데도 ‘도민 인권헌장’ 제정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 종교단체 반발이 예상되는 사업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전남도 등에 따르면 실무부서인 전남도 자치행정국은 지난 4월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회의를 개최한 이후 인권헌장 제정 노력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날 회의에서 ‘도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도록 노력한다’고 결정했지만 이후 진행된 사업이 전무했다.

이런 사이 지난 7월 전남에선 전국적 지탄을 받은 벽돌공장 이주민 노동자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 4월 미국 관세국경보호청이 신안 모 염전에서 발생한 강제노동을 문제 삼아 천일염 제품에 대한 수입 보류 명령까지 내렸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인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지만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진했던 인권헌장 제정 노력은 뒷걸음쳤다.

인권 헌장은 주민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권 기준과 실천 지침을 제공한다. 또 지역 내 차별 해소와 포용적 문화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전남도 외국인 주민이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8만6729명(1월 기준)으로 증가한 추세에 따라 중요성이 한층 강조됐다.

전남도 역시 이런 인식에 따라 지난 2023년 제정에 나섰다. 당시 공개된 초안은 전문을 비롯해 22개 조항으로 구성됐다. 또 인권헌장 이행방안으로 인권증진 기본계획 수립과 시행, 인권실태조사 실시와 공포, 정부 및 인권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사업 추진 등을 추가했다. 특히 순천 등 전남 22개 시·군에 인권증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요청해 11개 시·군이 참여하는 성과를 만들었고, 2023년 10월 25일 도민의 날 기념식에 맞춰 선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종교단체 등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제정에 필요한 모든 논의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게다가 당원 모집 등 내년 지방선거 일정이 사실상 시작되면서 갈등을 초래할 사업을 미루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주 경우도 ‘제주평화인권헌장’ 제정 절차에 착수했지만 반대단체의 강한 반발로 제정이 불투명한 상태다. 이런 반발 등으로 현재 제정된 곳은 광주와 충남 등 두 곳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제정이 안 되더라도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면서 “내년부터 예산을 세워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방국진 기자 kjb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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