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논란 ‘삼성생명 회계처리’ ① 보험계약자 몫 ‘삼성전자 지분’ 수익
삼성생명, 국제회계기준 예외‘일탈회계’ 적용…그마저도 스스로 원칙 깨
삼성전자 주식 매각 않겠다고 했지만 2월에 팔아 … 반기보고서에 일탈회계 유지
당국 ‘회계처리 적정성 검토’ 21일 회의 … 문제되면 향후 삼성전자 주식처분 쟁점
회계 논란 촉발 알고도 삼성전자 주식 매각?… 그룹측과 협의 여부, 책임 소재 따져야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주식과 연관된 ‘보험계약자 몫’의 회계처리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일부는 유배당보험 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로 매입한 것이어서 계약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부채이지만 현재 회계상 ‘보험부채’가 아닌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항목으로만 표시해놓고 있다. 국제회계기준에서 보면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인정하는 ‘일탈회계’를 적용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생명은 국제회계기준인 IFRS4가 2023년 새로운 기준(IFRS17)으로 바뀌었음에도 금융당국의 용인 하에 이 같은 일탈회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일부를 매각하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일탈회계 적용의 사실상 전제 조건을 삼성생명이 스스로 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은 지난 13일 공시한 반기보고서에서 일탈회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일탈회계를 적용받을 수 있었던 전제 조건을 어겼지만 IFRS17 원칙으로 복귀하지 않고 일탈회계를 고수한 것이다.
삼성생명을 둘러싼 회계 논란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삼성생명이 차지하는 핵심적인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21일 보험과 회계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고 삼성생명의 회계처리가 적정했는지, 일탈회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기로 했다. 금감원 역시 일탈회계를 지속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은 지난달 16일 포럼을 열고 먼저 문제제기를 했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은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과거 유배당 보험계약자의 보험료로 취득한 관계사 주식을 장기간 보유하면서, 해당 자산의 평가이익 중 계약자 몫에 해당하는 금액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원가기준 부채에 반영해왔다”며 “2023년 IFRS17이 도입됐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생명보험사는 이러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공정가치 기반의 보험부채 평가를 적용하지 않고 회계정책 일탈을 선언해 기존 원가기준 부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일부에서는 계약자지분조정으로 처리한 관계사 주식의 매각은 질의(일탈회계를 허용한 금감원 질의 회신문) 당시의 조건 및 상황의 변경에 해당돼 IFRS17 원상복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며 “생명보험회계의 국제적 정합성과 공정가치 평가의 과제를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왜 일탈회계를 했고, 전제 조건을 어겼나 = 일탈회계 문제는 과거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보유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이전까지 보험사들은 주로 유배당 보험을 판매했다. 보험계약자들이 낸 보험료를 재원으로 주식·채권·펀드에 투자해서 수익을 올렸다. 유배당 보험은 보험사가 초과수익을 올리면 보험계약자에게 배당하는 상품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사들였기 때문에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 초과수익이 발생하면 일부를 보험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매각 의사가 없다는 회사측 의견을 받아들여 금융당국이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애매한 항목으로 계약자들에게 돌려줘야 할 몫을 재무제표에 표시하는 예외를 인정해줬다.
문제는 2023년 IFRS17이 도입되면서다. 그 전까지 적용된 IFRS4는 보험계약에 있어서 각국의 실무관행에 따른 회계처리를 허용했지만, IFRS17은 보험계약에 따른 현금흐름을 추정하고 가정과 위험을 반영한 할인율을 사용해 보험부채를 측정하도록 했다. 유배당보험계약에서 발생한 배당금 역시 보험부채 평가에 반영하는 회계처리를 따라야 하는 의무가 발생했다.
IFRS4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평가이익에 유배당 계약자 몫의 비율을 곱한 금액이 계약자지분조정 항목에 부채로 표시됐다면, IFRS17에서는 배당하겠다는 금액에 기초해서 보험부채로 표시해야 하는 것이다. 보험부채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주식 매각을 통한 현금화로 배당을 하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했으며 IFRS17이 시행될 경우 ‘계약자지분조정’을 계속 부채로 표시하는 것이 타당한지 금융당국에 질의했다. 회계상 매각 계획이 없는 주식은 자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과 삼성은 당초 계약자지분조정을 IFRS17에서 자본으로 표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약자한테 돌려줘야 할 몫’을 자본으로 분류하는 게 맞지 않다는 비판이 일면서 삼성생명이 계속 부채로 표시할지 여부를 금융당국에 질의한 것이다.
금감원은 논의 끝에 “계약자지분조정의 재무제표 표시가 재무제표 목적과 상충돼 재무제표이용자의 오해를 유발하는 것으로 회사 경영진이 판단했다면, 부채표시를 고려할 수 있다”고 일탈회계를 인정하는 결론을 내렸고, 삼성생명은 일탈회계를 적용해 지금까지 이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올해 초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깨지면서 일탈회계 인정 조건을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이 인정한 일탈회계 전제조건에는 삼성전자 주식을 팔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명문화돼 있지는 않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의 요구사항 준수가 개념체계상 재무제표 목적과 상충돼 재무제표이용자의 오해를 유발하거나 △관련 감독체계가 요구사항과 다른 회계처리를 의무화하거나 금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을 팔지 않기로 하면서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예외를 금융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일탈회계의 전제조건을 위반한 셈이다.
◆IFRS17로 복귀하면 ‘보험계약자 몫’ 처리 다시 쟁점 = 국제회계기준제정위원회는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명보험사들이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일탈회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국제기준인 IFRS17을 전면 도입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국제회계기준을 준수하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고 회계투명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삼성생명이 일탈회계를 벗어나 IFRS17로 복귀할 경우 ‘보험계약자 몫’을 어디에 표시할지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당초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겠다고 한 만큼 ‘자본’으로 분류하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2022년 ‘돌려줘야할 계약자 몫’을 자본으로 표시하는 게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다시 직면할 수밖에 없다. 보험계약자의 몫을 주지 않는 것은 보험업법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삼성생명이 보험사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보험부채로 표시할 경우 IFRS 원칙에 따라 실제 배당해야할 금액을 산출해야 한다. 배당을 하려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하는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할 계획이 없다고 하면 배당할 금액이 없기 때문에 실제 보험부채로 표시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자본으로 분류해도 문제가 되고 부채로 분류해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지만, 삼성전자 주식에 대한 매각 계획을 세우고 실제 매각을 통한 배당에 나설 경우 꼬여 있는 회계 실타래를 풀 수가 있다.
이한상 원장은 지난달 포럼에서 “공수표인 계약자지분조정 뒤에 숨어 삼성전자 주식은 영원히 팔지 않겠다며 IFRS17 보험부채를 0원으로 잡겠다는 비정상적 일탈에서 즉시 원상 복귀해야 한다”며 “삼성전자 주식을 판 부분은 IFRS17을 쓰고, 안 판 부분은 일탈회계를 계속 적용해 IFRS4의 계약자지분조정을 사용하겠다는 기괴한 회계를 주장할 경우 정상적인 국가의 금융당국이라면 철퇴를 내릴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팔 생각이 없어 IFRS17 보험부채가 0원이라면, (이를) 밝히고 유배당계약자와 시민사회, 정치권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달 6일 금감원에 생명보험사의 계약자지분조정 회계처리에 대한 감리를 요청했다.
◆삼성전자 주식 왜 팔았나? … 그룹 차원 개입 없었나 = 이 원장은 “이 모든 소란이 서초딩 사업지원 TF의 밸류업 헛발질에서 비롯된 것이니, 어른답게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초딩(서초+초딩 합성어)은 세간에서 삼성전자의 사업지원 TF를 일컫는 말로, 사업지원 TF는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그룹 내 핵심 조직이다. 이 원장의 이 같은 표현은 회계 논란을 촉발시킨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이 올해 초 삼성전자의 자사주 소각과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지난 2월 12일 주식시장 개장 전에 대량매매(블록딜)를 통해 삼성전자 주식을 각각 425만2305주. 74만3104주 매각했다. 두 회사의 매매 규모는 2800억원 가량 된다.
삼성전자가 3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면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늘어나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에는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10%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삼성전자가 주식을 소각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0%를 넘어서기 때문에 두 회사는 삼성전자 주식 매각을 통해 지분을 10%에서 약 9.92%로 낮췄다. 이후 삼성전자의 주식 소각으로 두 회사의 지분은 각각 8.51%, 1.49%로 다시 10%가 됐다.
이 원장이 ‘사업지원 TF의 밸류업 헛발질’이라고 말한 것은 삼성전자 지분 소각으로 회계 논란이 시작됐고,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만 매각했으면 삼성생명이 ‘일탈회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었음에도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까지 팔면서 회계정책의 일관성이 깨져버린 것을 말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비율 만큼 매각을 한 것으로 안다”며 “이 같은 논란이 벌어질 것을 알고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사업지원 TF와 이 문제를 상의한 이후 삼성전자 지분 매각을 진행했는지 독자적으로 진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국제적으로 중요한 회계 이슈를 간과했다는 점에서 그룹과 삼성생명 양측 모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이와함께 삼성화재도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면서 삼성생명은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게 됐고, 또 다시 ‘지분법 적용 여부’를 다투는 회계 논란을 일으켰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14.98%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화재가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면서 지분이 15.43%로 늘어나게 됐다. 보험업법상 보험사는 다른 회사 주식을 15% 이상 소유할 수 없고, 삼성생명은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게 됐다.
삼성화재가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에 유의적 영향력을 보유한 만큼 지분법(삼성화재의 성과를 삼성생명 회계장부에 반영)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삼성생명이 또 다른 회계 이슈인 지분법 논란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 같은 회계 논란에 대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계약자지분조정 등 금감원이 제시한 처리 방법, 방침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기·오승완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