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류동근 한국해양대학교 총장
“‘1국1해양대’ 체계로 북극항로시대 준비 핵심 역할”
부산에 지·산·학·연 연결한 ‘오션밸리’ 구상 … “주목받지 못했던 해양 잠재력 폭발시키겠다”
류동근 한국해양대학교 총장이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국내외 해양산업과 국제질서 속에서 해양인력 양성에 대한 중요성과 해양대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그는 "한국해양대가 정부의 북극항로시대 준비에 협력하고 해양지배력을 회복하겠다"며 "해양 관련 투자를 강화하는 미국의 흐름에 대응할 토대가 마련돼 있다"며 이를 현실화하고 발전시킬 방안을 제시했다. 국립목포해양대학과 통합하는 ‘1국1해양대’ 모델로 ‘글로컬대학30’에 도전하는 의미와 한국과 미국이 관세협상을 하면서 합의한 미국조선산업부흥 프로젝트 ‘마스가’(MASGA)에 참여할 구상도 밝혔다.
한국해양대가 자리하고 있는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와 같은 개방형 해양생태계 ‘오션밸리’를 만들자는 구상도 내놓았다. 부산이라는 지역에서 전 세계와 네트워크하고 있는 글로벌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해양인력들을 양성해 해양강국 건설를 뒷받침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류동근 총장과 인터뷰는 11일, 13일 한국해양대 총장실과 내일신문에서 진행했다.
●정부는 신성장전략, 국가균형발전전략으로서 북극항로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옮기고 부산을 중심으로 남부권에 해양수도권 건설을 추진한다. 한국해양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북극항로 시대의 준비는 우리 대학에 주어진 새로운 국가적 소명이다. 한국해양대는 북극항로 특화 인재를 양성하고 북극항로 정책과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을 선도해야 한다. 또 항만 인프라 고도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우리 대학은 이를 수행할 최적의 역량을 갖추고 있다.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연구와 전문인력 공급을 통해 부산과 남부권이 북극항로 시대의 허브로 자리매김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 ‘1국1해양대’ 체계로 이를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국립목포해양대와 함께 ‘1국 1해양대’ 비전으로 글로컬30에 도전했다. ‘1국1해양대’ 전환은 왜 필요한가.
‘1국1해양대’로 전환은 선택이 아닌 대한민국 해양산업 미래를 위한 필연적 과제다.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 흐름 속에서 두 대학이 각자의 지역에 머물러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는 1국1해양대 체계로 시너지를 창출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통합을 넘어 고교-대학-기업을 잇는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 학과·전공의 벽을 허문 융합교육 실시,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한 캠퍼스 특성화, 글로벌 기업과 연계한 엘리트 인재 양성 등 대한민국 해양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도전이다.
부산의 강점인 첨단 해양산업과 목포의 강점인 해양안전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해양 전 분야를 아우르는 세계적 수준의 교육·연구 역량을 갖추고 수도권에 버금가는 초광역 해양 교육·산업 벨트를 구축해 청년 인재가 지역에 정주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국가 신성장동력과 균형발전’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도 ‘해양지배력을 회복하겠다’며 해양인력 양성을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해양대가 미국 해양인력양성과 협업 구상은.
미국이 해양인력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는 것은 해양패권의 핵심이 결국 ‘사람’에 있다는 것을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해기사와 해양 전문인력 양성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는 미국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우리의 핵심 역량이다.
지난 6월 미국상선사관학교(킹스포인트)와 뉴욕주립대를 방문해 교수·학생교류와 공동연구, 미국학생들과 한국 단기 실무교육, 해양기업 및 조선소 현장 실습 프로그램 운영 등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공동 세미나 개최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했다. 교육·산업·문화의 차이를 넘어 ‘해양’이라는 공통된 가치를 중심으로 협력의 가능성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다.
최근 1국1해양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목포해대와 함께 싱가포르 난양공대와도 업무협약을 맺었다. 미래 첨단 해양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난양공대는 인공지능 자율시스템 신소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선박 녹색물류 스마트항만 등 분야에서 공동 연구와 협력을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과 미국은 미국조선산업부흥을 위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한국해양대도 참여할 구상인가.
그렇다. 한국해양대는 해운-조선-금융-기자재-항만-물류-법률에 이르는 해양산업 생태계 전반의 인력양성 체계를 갖춘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대학이다. 우리 대학 조선공학(현 조선해양시스템공학부)은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태동과 성장을 함께 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스가 프로젝트와 연계해 미국에 ‘케이 마리타임(K-Maritime) 인력양성 사업’을 제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대학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내 건조 선박의 설계 및 감리 인력 △액화천연가스(LNG) 등 친환경 선박의 운용 및 관리 인력 △스마트 해운·항만·조선 운영 전문인력 등의 양성과 복수학위 프로그램 운영 등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인적 자원의 글로벌 확대를 넘어 우리의 교육 시스템과 산업 표준을 미국에 전달하는 효과까지 낼 수 있다.
●해운 조선산업에 인공지능을 결합하기 위해 양질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중요한데, 한국해양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우리 대학은 해양 분야 ‘소버린 AI’(인공지능 주권) 개발을 위한 데이터댐(Data Dam) 역할을 수행할 최적의 기관이다. 대학이 보유·운영하고 있는 실습선(한바다호, 한나라호)은 실제 대양을 항해하며 수집하는 운항 기관 기상 등 실시간 데이터를 축적하는 ‘움직이는 데이터 플랫폼’이다.
또 주요 선사와 기자재 등 유관 기업들과의 협력을 통해 우리는 상업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선박 건조 및 운용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정제·가공해 국내 AI 기업과 연구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해양 특화 데이터셋’을 구축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가 해양 분야에서만큼은 기술 종속을 넘어 완전한 AI 주권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겠다.
●한국해양대는 수중 데이터센터를 구상하고 있는데, 어디에 어떻게 할 계획인가.
전력 소비가 막대한 데이터센터를 바다 속에 설치해 냉각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육상공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기술적 타당성과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입지는 우리 대학이 위치한 부산 영도 해안이나 인근의 유휴 해상공간이 후보지가 될 수 있다. 대학의 연구 인프라와 가깝고, 해저 케이블 등 기존 인프라와 쉽게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소규모의 ‘연구용 테스트베드’를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컨테이너 형태의 소형 모듈을 제작해 수중에 설치하고 전력공급, 데이터 전송, 유지보수, 해양환경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실증하는 것이다.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상용화 모델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정보기술(IT) 인프라 구축을 넘어 조선·해양플랜트·해양에너지 기술이 융합되는 새로운 신산업을 창출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해양대는 부산 울산 경남(부울경) 산업단지와 남부권(목포~포항) 산업단지 기업들과 결합한 산·학·연 협업을 어떻게 하고 있나. 해외기업들과 협업은 어떠한가.
우리 대학은 전통적으로 부울경 지역의 조선, 기자재, 항만물류 산업과 긴밀한 산학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다양한 성과도 거두었다. 하지만 개별 기업 단위의 협력에 머물러 산업 생태계 전체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글로컬대학 사업과 연계해 산학협력의 패러다임을 바꿀 계획이다.
글로컬대학 모델의 핵심 중 하나가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와의 연계다. 우리는 부울경 및 남부권 산업단지 전체를 아우르는 ‘산업 분야별 기술위원회’를 구성하고 개별 기업의 애로기술 해결을 넘어 산업 클러스터 전체의 기술 혁신과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해외 기업과의 협업은 ‘글로벌 인재 양성’과 ‘첨단 연구·개발’ 두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유럽의 주요 선사 및 선박관리 회사들과는 학생들의 인턴십과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 미국 해양대학들과는 앞서 말한 것처럼 미래 기술 분야의 공동 연구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 대학 라이즈사업단 중심으로 글로벌산학협력센터(16개) 및 해외동문기업(400여개)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수행할 것이다.
●한국해양대와 해양클러스터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오션밸리’를 구상하고 있는데
‘오션밸리(Ocean Valley)’는 우리 대학과 부산의 미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부산 영도를 중심으로 해양 분야의 연구·개발과 스타트업 금융 법률 정책 등이 한데 어우러진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구상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해양 분야의 무한한 잠재력을 이 오션밸리를 통해 폭발시키고자 한다.
오션밸리의 핵심 주체는 한국해양대학이다. 우리 대학이 아이디어와 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하고,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형성될 해양 클러스터가 동맥이 되어 산업계 전반으로 혁신의 에너지를 퍼뜨리는 것이다.
특히 첨단해양과학기술 산업을 선도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세계적인 수준의 해양과학기술경영대학원을 설립·운영해 학문과 산업을 연결하고 글로벌 해양 리더를 체계적으로 배출할 계획이다. 부산형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사업’도 이 구상을 현실로 만드는 중요한 기회다.
오션밸리와 세계적인 해양과학기술경영대학원 설립을 통해 부산을 해양 신산업의 수도로 만들고 청년들이 돌아오는 도시로 만드는 데 우리 대학의 모든 역량을 쏟겠다.
정연근·김기수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