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안보위협과 지구촌의 위기

2025-08-20 13:00:02 게재

국제 안보환경, 기후변화 전염병 난민 테러 에너지 등 ‘비전통 안보’ 위협에 직면

탈냉전 시대가 저물고 세계화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면서 우리는 국제 안보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기존의 국가 중심의 군사 정치 외교적 위협만으로 설명되던 ‘전통적 안보’를 넘어서 지구촌 모두를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안보위협이다. 기후변화와 전염병, 난민 테러 에너지 사이버 식량 등 비군사적 위협으로 구성된 ‘비전통 안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마주하고 있다. 세계화의 단면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은 국가 간 초연결성과 상호의존성 확대에서 기인한다.

상호의존성의 증가는 경제성장의 기회와 협력을 확대하지만 외부위협에 대한 취약성이 높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단일국가의 보건문제로 시작된 전염병은 순식간에 전세계를 마비시켰다. 이는 비전통 안보 위협이 초연결된 지구촌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였다.

이렇듯 비전통 안보 위협의 특징은 단일국가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지구촌의 숙제라는 점이다. 안보개념이 단순히 영토보존에서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비군사적 요소로까지 확장되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비전통 안보 위협에 취약한 아프리카

그렇다면 비전통 안보 위협에 가장 취약한 곳은 어디일까. 아프리카다.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 공중보건 위기, 식량부족, 경제적 불안정, 그리고 빈약한 거버넌스와 인프라 등 고질적인 문제들은 비전통 안보 위협에 대한 회복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복합위기는 단순히 국가안보를 넘어서 국민 개개인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인간안보’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서도 인간안보의 보편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지 못할 때 외부개입은 정당화된다고 설명한다. 아프리카의 현실은 단순히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생존과 직결되기에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기후변화다. 아프리카는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4% 미만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가장 심각하다. 가뭄과 사막화는 농업 중심의 아프리카 경제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2100년까지 작물 순수입이 9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한다.

이달 11일 수단 다르푸르 지역 주민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날 무장단체 RSF(수단 신속지원군)가 1년 넘게 포위하고 있던 다르푸르 북부주 난민캠프를 공격했다. 구조대원들은 민간인 40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2023년 4월 시작된 수단군(SAF)과 RSF 전쟁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AFP=연합뉴스
기후변화는 식량생산 기반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해수면 상승, 물 부족, 생태계 파괴, 난민 발생을 유발한다. 이는 다시 사회경제적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진다. 현재 1500만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수단분쟁도 홍수를 부분적 원인으로 볼 수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 아프리카인들의 실존적 위협인 것이다.

보건안보 또한 심각한 위협요소다. 에볼라 에이즈와 같은 전염병은 아프리카 사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쳐 보건안보의 취약성을 그대로 나타낸다.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는 전세계 에이즈 관련 사망 사례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전염병의 증가는 글로벌 연결성과 운송수단의 증가로 인해 빠르게 확산된다. 따라서 단순한 보건안보를 넘어 국제경제 질서와 복합적으로 얽혀 모든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확대되곤 한다.

식량안보 역시 기후변화 인구증가 분쟁과 긴밀히 맞물려 있다. 아프리카는 연평균 약 350억달러에 달하는 식량을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외부 충격은 식량, 특히 밀의 공급망을 교란하여 가격을 폭등시키고 이미 빈곤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이러한 복합위기의 또 다른 측면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의 확산이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본거지인 아프리카의 뿔 지역, 알카에다 서식지인 북아프리카, 보코하람과 IS의 활동지인 서아프리카 사헬지역 등은 글로벌 테러의 진원지로 인식되고 있다.

이들이 불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아프리카의 풍부한 천연자원 때문이다. 극단주의 테러집단들의 주둔지는 천연자원 매장지 또는 국제 물류 유통망 지역이다. 자금의 용이한 확보는 극단세력의 무장화를 강화하고 가난에 내몰린 청년층들을 포섭하는 데 사용된다.

천연자원이 국가 발전의 주춧돌보다는 폭력과 착취의 영구적인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모순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자원과 유통경로의 통제권을 둘러싼 집단들 간의 다툼으로 내전과 쿠데타가 반복되면서 역시나 많은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아프리카 취약성 디지털 공간에서도 노출

디지털 공간에서도 아프리카의 취약성은 그대로 노출된다. 이 공간은 극단주의자들의 선전선동 매체로 쓰이기도 하지만 인터넷 보안이 취약한 아프리카에선 사이버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일부 다단계 범죄 조직은 빈곤과 실업에 처한 청년층을 해킹 인신매매 등 범죄에 동원한다. 특히 나이지리아는 우리도 경험했던 ‘나아지리아 스캠’이라 불릴 정도로 국제사기집단의 주요 거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사이버 공간의 위협은 단순한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취약성과 결합된 구조적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또 사물인터넷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 전지구적 위협이자 심각한 인권침해와 연관되어 있다.

위기증폭 연쇄 고리 끊는 게 관건

이렇듯 아프리카가 직면한 비전통 안보 위협은 단편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 아니다. 실타래처럼 서로 끌고 당기면서 위기를 증폭시키는 연쇄효과를 일으킨다.

기후변화는 식량난을 불러오고, 식량난은 빈곤과 사회적 분쟁을 촉진한다. 분쟁은 난민을 만들고, 난민은 국가의 생산력을 약화시킨다. 청년 실업률은 극단주의의 토양이 되며 국제적 테러 확산의 기반이 된다. 즉 지속가능한 발전의 모든 기반을 뒤흔든다. 따라서 빈곤퇴치와 인적개발, 생태계 복원은 아프리카의 지속가능한 안보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며 전 지구적 숙제다.

물론 아프리카는 이러한 복합위기에 맞서 자체적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AU)과 8개 지역 경제공동체들은 평화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상이한 국가 이익과 부실한 거버넌스, 협력의 장벽으로 인해 실질적 성과를 거두기엔 여전히 역부족이다.

이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프리카의 비전통 안보 위협을 상호의존적인 초국가적 안보위기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자원 배분의 어려움으로 인해 서방 국가들의 개입은 단기적 처방에 그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트럼프 2기 정부의 유에스에이드(USAID) 폐쇄는 아프리카의 회복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군사 협력 패키지 확대로 메우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안보질서의 다극화와 지정학적 재편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우리에게 기회일 수 있다. 우리의 강점을 살려 아프리카가 추진하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성장과 실업률 제고를 위한 포용적 성장전략에 발맞춘 공동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필요한 자원공급망의 다양화를 시도하면서 기업의 혁신기술을 현지화해 우리기술 표준화 및 청년일자리 창출, 탄소배출량을 저감하는 스마트시티 구축, AI 기반 분석기반 조성, 기상이변 현상에 대한 조기경보 체제, 사이버 방호 등의 기술과 제도 융합형 협력 모델을 구체화해야 한다.

아프리카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

가봉의 마상고족 속담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람은 자기를 ‘홀로 춤추는 나뭇잎’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계가 점점 더 가까워지며 ‘촌(村)’이 되고 있는 지금, 아프리카의 비전통 안보 위협은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다. 더 이상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해결과제다. 국제사회는 비전통 안보 위협인 빈곤 퇴치, 거버넌스 강화, 기후변화 적응, 보건 시스템 구축, 그리고 평화 구축을 위한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아프리카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다. 아프리카의 비전통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지속가능한 지구촌 공동체를 위한 투자이자 모두의 생존과 평화를 위한 전략적 과제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 정치외교학

유럽아프리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