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산업 위기 지원 나선 정부…‘자발적 구조조정’ 우선
범부처 오늘 구조 개편 방향 논의
계획안 접수 후 지원책 내놓기로
석유화학업계 평균가동률 60%대
1년 내 만기대출 규모 4조6000억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 구조개편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대책을 마련한다. 다만 세부 방안은 업계가 설비 감축이나 통합 등 구조조정 의지를 먼저 보인 후 구체화될 전망이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면 정부가 그에 상응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생산설비 감축·폐쇄나 사업 매각 등 자구노력을 하는 기업에는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다만 기업 간 설비감축 협의가 담합·독과점 문제로 직결될 수 있어 업계에서는 선결과제로 공정거래법 완화를 꼽고 있다.
◆산업경쟁력강화 장관회의 개최 =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를 개최하고 ‘석유화학산업 재도약 추진방향’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통폐합 대상이 되는 업체들을 중심으로 구조개편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또 하반기 중 이들 업체로부터 구체적인 사업개편 계획안을 제출받아 향후 마련할 지원책의 근거로 삼을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번 회의에서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까지는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조 개편 의지를 보인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회의 주요내용을 담아 이날 오후 ‘석유화학 구조개편 방안’을 공식 발표한다.
산경장은 산업 분야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범부처 회의체다. 정례 회의가 아니라 특정 산업 현안이나 구조조정 이슈가 불거졌을 때 필요에 따라 열린다. 최근에는 석유화학 업계 구조조정 필요성이 부상하면서 주요 안건으로 논의되고 있다.
◆과잉투자시설 해소 논의 = 정부는 과잉투자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나프타분해설비(NCC)를 구조조정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감축 수준이나 인력 재배치에 대해선 업계 의견을 모아 결정할 전망이다. 정부는 기업의 ‘자발적 구조조정’ 방안을 확인한 뒤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최근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범부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업계의 자구노력을 강조했다. 이는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처럼 정책자금이 대거 투입된 것과 달리 석유화학은 기업의 자율적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정부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인수·합병 수행 과정에서 기업결합심사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 컨설팅을 지원하고, 관련 정보교환에 대한 사전 심사를 간소화하는 등 규제 완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관련 세제지원으로는 사업 재편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와 과세이연 적용 방안이 거론된다. 고부가가치·친환경 소재로의 전환을 위한 세제지원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경제 충격 최소화 방침 = 특히 현행 공정거래법상 과잉설비 감축 논의는 담합으로 간주돼 기업 간 협의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적 제약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공동행위가 허용될 경우 곧바로 ‘공급 제한→제품 가격 상승→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적 보완 없이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완책도 병행할 방침이다. 석유화학산업이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어 대규모 설비 감축이 현실화될 경우 협력업체 생태계와 지역 일자리에 직격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용유지지원금 요건 완화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여천NCC는 지난 8일부터 여수 3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LG화학과 롯데케미칼도 일부 생산라인을 멈추거나 철거했다. 올해 상반기 주요 석유화학 업체들의 평균가동률도 60%대까지 떨어졌다.
금융권 채무상황도 악회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석유화학업계의 향후 3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은행권 대출규모만 1조8000억원대 규모다. 만기 1년 이하는 약 4조6000억원이다. 지난해 1월 말 대비 각각 90%와 120% 이상 급증했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관련 업계 대출을 줄이면서 만기를 짧게 부여하고 있어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지 않을 경우 자금 회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3개월 만기 대출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지난해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롯데케미칼(6686억원)이다. 여천NCC에 대한 3개월 만기 채권 규모도 4100억원에 달한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불황에 빠지면서 올 1분기에만 49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주요 기업들의 신용등급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