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진법사 관봉권 띠지 분실’ 파장 확산
정성호 법무부 장관 지시에 대검 감찰 착수
정치권·시민사회 “조직적 증거인멸” 의혹 제기
검찰이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에서 확보한 돈다발 관봉권 띠지를 분실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이 감찰에 착수했지만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검찰의 조직적인 증거인멸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 감찰부는 전날 감찰3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조사팀을 서울남부지방검찰청으로 보내 ‘띠지 분실’ 관련 감찰에 착수했다.
언론에서 관련 사실이 보도된 지 하루도 안 된 시점으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강력한 지시에 따른 것이다. 법무부는 이날 “정 장관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남부지검의 건진법사 관봉권 추적 단서 유실 및 부실 대응 문제와 관련해 매우 엄중한 사안이므로 진상 파악과 책임소재 규명을 위한 감찰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도 “금융사건 수사 전문 검찰청인 서울남부지검이 중요 증거를 이렇게 허무하게 ‘분실’하는 것도 모자라 사기 저하를 우려해 감찰조차 하지 않았다는 해명은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며 “국민들의 의혹이 없도록, 수사 과정 중 부적절한 일이 없었는지 엄중하게 감찰할 것을 즉각 지시했다”고 밝혔다.
앞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 자택을 압수수색해 1억6500만원어치 현금다발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5000만원어치 신권은 한국은행이 밀봉한 관봉권이었는데 남부지검이 수사과정에서 관봉권의 띠지와 스티커를 분실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띠지에는 검수 날짜, 담당자, 부서 등이 기록돼 있어 자금의 출처를 추적하는 핵심 단서로 꼽힌다. 남부지검은 4개월이 지나서야 분실 사실을 파악했고, 수사팀 사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감찰도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통일교측으로부터 현안 청탁과 함께 다이아몬드 목걸이 등을 받고 이를 김건희 여사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는 등 김 여사의 각종 의혹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런 전씨와 관련한 수사에서 검찰이 유력한 증거를 분실한 것이다.
남부지검은 직원의 실수로 띠지 등을 잃어버렸다는 입장이다. 현금을 압수한 직원과 이를 보관·관리하는 직원이 다른데 직원이 현금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띠지와 스티커를 유실했다는 것. 감찰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수사 중 감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관봉권의 띠지가 현금의 출처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것을 수사를 해본 사람이면 모를 리가 없다”며 “이렇게 허술하게 잃어버렸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남부지검장이 ‘친윤’ 검사로 평가받는 신응석 전 검사장이었다는 점에서 증거인멸 의혹까지 제기된다. 신 전 검사장은 검찰 재직 당시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꼽혔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 형사3부장을 지낸 바 있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말도 안되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 검찰에서 발생했다”며 “서울남부지검 신응석 검사장 예하 정치검찰이 윤석열과 김건희의 죄를 묻기 위해 증거인멸의 방법으로 수사 방해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실수로 볼 수 없으며 검찰의 조직적 증거인멸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며 “수사담당자들이 권력자와 관련된 사건의 증거를 조직적, 의도적으로 폐기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신 전 지검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