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부당한 요구 맞서 디지털 산업 지켜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25일 열릴 예정인 한미 정상회담에서 혹여 대한민국 디지털산업을 난도질할까 두려워서다. 상호관세(실제는 일방관세)를 발표할 때처럼 막무가내로 이재명 대통령을 몰아붙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20일 오후 뜬금없이 ‘미국 디지털서비스 업계, 이재명 대통령 방미 앞두고 무역장벽 완화 촉구’라는 메일이 왔다. 발신인은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홍보를 맡고 있는 국내 홍보대행사다. 자료에 CCIA는 다양한 통신 및 기술 기업을 대표하는 국제 비영리 무역단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본문 내용을 보니 CCIA는 구글 넷플릭스 등 빅테크를 비롯한 미국 IT기업을 대변하는 단체로 추정된다.
CCIA는 “지난 몇 년 간 한국은 미국 디지털서비스 공급업체의 한국시장 진출 능력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주요조치를 통과시키거나 제한했다”며 그 사례로 △네크워크 사용료 △클라우드 보안 인증 프로그램(CSA) △온라인플랫폼 규제 제안 △정밀 지도 데이터 수출 제한 등을 꼽았다. 이어 “이러한 조치는 미국 디지털 기업을 한국 시장에서 경쟁적으로 불리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구글 넷플릭스 같은 빅테크 기업이 수년간 주장해 온 내용이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요구다. 구글은 지난 2월 국가지리원에 축척 1대 5000 수치지형도를 자사 해외 데이터센터 등에 반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거 두 차례 요청했으나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등 정부가 제안한 조건을 거절하면서 불허된 바 있다.
한국시장을 싹쓸이하고 싶은 빅테크 입장에서 보면 우리의 제도와 조치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부당한 수준은 아니다. 불편과 부당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호관세가 부당한 것이다.
더욱이 인공지능(AI) 대중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미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은 개인정보를 비롯한 디지털자산(데이터) 보호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을 제한하거나 자국 내 보관을 의무화하는 등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클라우드 액트’, 중국 데이터보안법, 유럽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흐름을 고려하면 미국 빅테크들 요구는 충분히 거부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에선 ‘21세기판 쇄국정책’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그게 아니다. 정당한 거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밀지도, 망 대가, 클라우드보안 등의 문제는 대한민국 디지털산업 육성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현재 중추 산업이 급하다고 미국 압박에 굴복해 내줘서는 절대 안된다.
고성수 산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