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인텔 ‘정부 지분’ 논쟁과 한국의 숙제

2025-08-22 13:00:02 게재

인텔 지분 10%를 연방정부가 확보하는 방안이 거론되면서 미국 내부에서는 ‘보조금에서 지분으로’의 전환이 시장 질서와 혁신 인센티브를 흔들 수 있다는 논쟁이 커지고 있다. 보수 성향 언론과 자유시장 진영은 이를 ‘기업 국가주의(corporate statism)’의 조짐으로 본다. 정부가 규제자·지원자·주주를 동시에 겸하면 이해상충이 제도적으로 굳어지고, 경영판단이 정치일정과 정책 우선순위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안보를 중시하는 진영은 핵심 공급망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 도구라고 본다. 핵심은 ‘개입하느냐’가 아니라 개입을 하더라도 어떤 틀과 규칙(지분 구조, 의결권·거부권, 일몰 등)으로 묶느냐다

미국 내부의 우려, 무엇을 말하나

미국 내 논쟁의 초점은 대략 다섯 갈래로 정리된다. 첫째, ‘망할 수 없는 기업’이라는 기대가 형성돼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비용이 납세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도덕적 해이론이다. 공장폐쇄나 인력감축 같은 불편한 결정이 정치일정과 지역민원에 좌우될 수 있다는 사례로 공기업화된 철도와 항공 관제의 비효율이 거론된다.

둘째, 공공자금과 지분이 결합하면 경영의 시선이 고객과 기술보다 관료와 예산으로 향해 혁신동기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 우선순위가 기술지표보다 고용·지역 안배로 기울면 가장 앞선 칩 제조 공정의 성능과 수율을 끌어올리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정부가 특정 기업의 주주가 되는 순간 경쟁의 공정성에 의문이 생긴다. 특히 파운드리 시장에서 해외 고객은 주문과 납품에 정치 변수가 개입하지 않겠느냐고 묻기 시작하고, 이런 의심이 커지면 ‘정치에 따라 고객을 가릴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고 장기 위탁생산 계약은 불안정해진다.

넷째, 지분과 특별권(‘황금 주식’, 수익 공유, 특정 의사결정 거부권 등)의 선례가 확장될 위험이다. 한번 문이 열리면 다른 산업으로 복제되기 쉽고, 기업은 연구개발보다 로비에 더 공을 들이게 된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다섯째, 가격책정과 지배구조의 투명성 문제다. 어떤 기준으로 지분을 얼마에 주고받는지, 의결권과 종료(일몰) 규정을 어떻게 정하는지에 따라 이 조치가 공정한 투자로 보일지 사실상의 국유화로 보일지가 갈린다. 또 새 주식을 발행하면 기존 주주 몫이 줄고, 손실이 나도 정치적으로 덮어두려는 유혹이 생긴다는 점도 핵심 쟁점으로 거론된다.

또 하나의 쟁점은 법적 근거와 프로그램 설계다. 칩스(CHIPS)법이 본래 보조금과 대출, 세액공제를 축으로 설계된 만큼 지분 투입이 별도 권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는 회의론도 있다.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정부 자본이 신용도를 높여 단기 조달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장기적으로는 의사결정 지연과 규제 리스크로 할인 요인이 생긴다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미국 안보·산업정책 진영의 일부는 정부가 주주가 되더라도 전환우선주와 워런트로 수익을 함께 나누고, 거부권은 매우 좁게, 종료 시점은 명확히 정하면 비교적 시장친화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조차 설계에 실패하면 정치화의 비용이 커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한국이 챙겨야 할 것들

이상의 논점을 염두에 두면 반도체 분야는 한미 간 세부 협상이 아직 남아 있다. 지난번 한미 관세협정에선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자동차(미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품목)도 15%로 맞추는 데까지만 합의가 이뤄졌다. 반도체·의약품은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대우한다’는 원칙만 확인됐고, 칩 관세의 예외·면제 기준·미국 내 생산 인정 범위·수출통제·보안심사 절차 등은 후속 협상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은 지금부터 계약과 외교, 두 축을 정리해야 하지 않나 싶다. 기업은 미국과 맺는 투자·구매계약에 ‘정치적 사유로 공급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문구와 분쟁 중재, 일몰·재검토 시점을 분명히 넣어 정치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안전핀을 미리 마련해 두는 게 좋을 듯하다. 정부는 반도체 관세의 예외·면제 기준과 미국 내 생산 인정 범위, 이른바 ‘골든 셰어’식 통제의 배제, 그리고 세액공제·선주문 중심의 예측가능한 지원을 문서로 담아두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수출통제·보안심사 절차와 일정도 공개·명문화해 기업이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요지는 간단하다. 기업별 특혜가 아니라 규칙으로 거래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할 때 한국의 기술과 공급망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흔들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김상범 국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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