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20년 숙원, 노란봉투법 내년 시행
양대노총 “노동자 누구나 교섭할 권리, 끝이 아닌 시작” … 경제6단체 “유감, 보완입법 뒤따라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노동계의 ‘20년 숙원’이 풀렸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손해배상의 고통을 호소하며 분신한 지 23년 만이다.
24일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건 2004년 첫 법 개정 시도가 있은 지 21년 만이다. 이 법은 사용자의 범위와 노동쟁의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해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게 했다. 또 노조의 합법파업 범위를 근로조건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으로 넓혔다.
사용자가 손해를 입었더라도 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조건에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 그 밖의 노조활동을 추가했다. 또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 또는 근로자의 이익을 방위하기 위해 부득이 사용자에게 손해를 가한 노조 또는 근로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명시했다. 불법행위를 무조건 보호하거나 면책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여한 정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해 정당한 법적 책임과 권리 보호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장치를 마련하려는 취지다.
노란봉투법은 공표 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시행될 예정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의 시작은 2003년 두산중공업과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던 배달호·김주익씨의 사망 사건이었다. 두 사건을 계기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손배·가압류가 노조를 옥죄는 신종무기로 기능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2003년 1월 두산중공업(당시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던 배달호씨가 분신자결했다.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참여했던 배씨는 회사로부터 65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배씨를 비롯한 조합원의 임금 53억원이 가압류됐다. 같은해 10월 김주익씨도 자살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해 파업에 참여했는데 돌아온 것은 150억원대의 손배였다.
1년 뒤인 2004년 회사의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은 2014년 법원이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한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47억원 손해배상 판결을 하자, 한 시민이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4만7000원을 넣은 노란봉투를 한 언론사에 보낸 데서 유래했다.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아 준 것에 착안해 손해배상금 47억원을 10만명이 4만7000원씩 나눠 내자는 제안이었고 성금 14억7000만원이 쌓였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했다. 이후 여러차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그러다가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파업 후 470억원에 달하는 손배 청구를 당한 것을 계기로 노란봉투법이 재소환됐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윤석열정부들어 두차례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지만 윤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 시행이 좌절됐다.
민주노총은 24일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열사가 쓰려졌고 노동자들은 피와 땀으로 거리를 메우며 외쳐왔다”면서 “오늘의 성과는 그 숭고한 희생이 만든 역사적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법은 통과됐지만 후속 지침과 대책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정부가 노조법 개정 취지를 반영한 구체적 조치를 책임 있고 신속하게 내놓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한국노총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특수형태근로·하청·플랫폼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상대로 노조를 설립할 권리를 대폭 확대할 길이 드디어 열렸다”고 환영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을 확대하고, 불법쟁의에 대한 손배 책임을 제한한 노란봉투법이 통과된 데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법안 통과로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개념이 확대됐지만 법상 사용자가 누구인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이 어디까지 해당하는지도 불분명해 이를 두고 향후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경제 6단체는 노란봉투법 후폭풍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용노동부는 법 시행까지 6개월 동안 구체적인 매뉴얼 및 지침을 마련해 현장 우려와 불확실성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