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소멸 막을 복수주소제·고향사랑기부 법인허용 '속도'
연간 1조원 소멸대응기금도 확대
새정부 소멸위기지역 재도약 대책
이재명정부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확대하고 복수주소제를 도입한다. 고향사랑기부제에서 금지하고 있던 법인 기부도 허용하고, 지방 중소도시에 생활권 중심 집약형 도시(컴팩트시티)도 시범 조성하기로 했다. 인구소멸 위기지역이 재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겠다며 국정과제에 담은 대책들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인구소멸 대응 정책이 기존 정책을 손보는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을 뿐 새로울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국정기획위원회 ‘이재명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인구소멸 위기지역 지원을 위해 가장 먼저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또 수도권과의 거리, 인구소멸 지수 등을 고려한 차등지원 방안도 마련한다.
이 기금은 인구감소지역 89곳과 관심지역 18곳을 지원하기 위해 2022년 처음 조성한 재원이다. 연간 1조원씩 10년(2022~2031년)간 10조원 규모로 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한이 한시적인 데다 100개가 넘는 지자체에 배분하는 것이어서 지자체들이 실질적인 인구유입 정책을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재명정부가 기금 규모를 확대하려는 이유다.
현재 지방소멸대응기금이 대부분 시설조성 위주로 쓰이고 있다는 점과 집행률이 저조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 107개 지자체 중 상당수가 이 기금을 기반시설 조성에 쓰고 있다. 집행률도 심각하게 낮다. 89개 인구감소지역 시·군·구의 지난해 집행률은 32.9%에 그쳤다. 2023년에도 32.5%였다.
이 때문에 정부는 기금 운영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성과 지표를 시설물 구축에서 생활인구·정주인구 유입으로 바꾸는 것이 기본 방향이다.
윤호중 행안부 장관도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지역소멸대응기금 심사기준 개선 의지를 밝혔다. 윤 장관은 “실질적으로 정주인구나 생활인구를 늘릴 수 있는 사업평가 기준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전면 손질하고 있다”며 “심사 기준을 좀 더 정교하게 짜겠다”고 말했다.
복수주소제 도입도 눈길을 끈다. 복수주소제는 생활권이 두곳 이상일 때 법·행정상 복수 주소를 인정해 해당 지역의 공공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일부 권리·의무(세금 투표 수당 등)를 배분하는 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5도 2촌’처럼 주중에는 도시에 주말에는 지방에 있는 사람,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 방학엔 본가에 있는 사람 등이 복수주소 부여 대상이다. 매일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대상일 수 있다. 이들에게 두 지역 주소를 모두 부여해 주민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과도기적 형태로 실제 활동 지역에 등록해 공공서비스 이용의 근거를 주는 생활인구 등록제를 우선 검토하고 있다. 더 나아가 특별자치도나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복수주소제도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한 법인 기부 도입도 추진한다. 현재는 개인만 기부할 수 있지만 이를 법인에도 허용해 모금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기부할 수 있는 지자체를 인구소멸 위기지역 등으로 제한해 고향사랑기부제가 소멸위기 대응 수단으로 역할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생활권 중심 집약형 도시(컴팩트시티) 조성도 새정부가 추진하는 인구소멸 위기지역 지원 대책 중 하나다. 컴팩트시티는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압축·집약해 개발하는 도시 형태를 말하는데, 이를 지방소멸 대응과 도시재생 수단으로 활용한 일본 사례를 도입해 보겠다는 것이다.
이를 구현한 대표 도시가 일본 도야마현 현청 소재지인 도야마시다. 인구 40만명의 일본 중소 지방도시인 도야마시는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도심 공동화와 교외 확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폐선된 JR노선을 활용해 노면전차를 만들고, 이 철도의 정류장을 중심으로 의료·쇼핑·행정·주거 기능을 집중하여 배치하는 도시 재구조화를 추진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몇가지 정책만으로 인구소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위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지자체들은 본질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우려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방의 인구소멸은 좀 더 파격적인 정책을 통해 대처할 수 있다”며 “단순히 시혜적 대책보다는 지자체에 권한을 대폭 이양해 자발적으로 대안을 찾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