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저금리 향한 베센트의 모험
미국의 하반기 국채 발행 계획이 구체화됐다. 7월 30일 미국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7~9월 사이에 발행하는 신규 물량이 1조70억달러, 10~12월 사이엔 1조달러로 총 2조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23년 당시 옐런 전 재무부 장관이 하반기 동안 1조달러가 넘는 신규 국채를 발행해서 국채금리가 폭등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이대로 가면 미국의 금융시장이 또다시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
베센트 재무부 장관은 미국의 10년물 국채 등 장기물 금리를 낮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신규 물량의 무려 55%를 단기채로 채우고 장기채는 45%만 발행하기로 했다. 최근 미국 국채 발행에서 단기채의 평균비율이 20~25%인 것을 감안한다면 과거 베센트답지 않은 결정이다. 옐런이 단기채로 미국 재정을 운영했을 때 그녀를 맹비난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베센트는 재무부가 장기채를 다시 사주는 ‘바이백(Buyback)’의 연간 한도를 1200억달러에서 1500억달러로 확대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를 낮추기 위해 모든 방법 동원
단기채 위주 발행의 핵심 목표는 장기채 금리 폭등을 막는 데 있다. 베센트는 2분기까지 장기채 신규 발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4%대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국채 1조달러를 장기채로 발행한다면 당연히 장기물 국채금리는 5~6%대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베센트는 단기채로 조달한 자금으로 장기채를 매입해 무조건 장기채 금리만 잡으면 된다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단기채 금리가 올라가면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하로 이를 잡을 계획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1~6개월짜리 단기 국채의 금리는 일반적으로 같이 내려간다. 그럴듯한 계획이지만 여기에도 약점이 있다.
단기채 시장의 자금 여력에는 한계가 있다. 베센트는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를 재발행할 때 대부분 단기채로 전환 발행을 했다. 역레포 시장에 자금이 고갈되자 MMF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왔다. 2024년만 해도 전체 MMF자금의 38%만이 단기채에 투자되고 있었다. 베센트가 끝없이 단기채를 발행하면 MMF시장에선 기업어음보다 안전한 미국의 단기채로 더 많은 자금이 움직였다. 올해 8월에는 전체 MMF시장 규모 7조5000억달러 가운데 무려 3조6000억달러가 단기채에 투자됐다.
끊임없이 늘어나는 단기채를 도대체 누가 매입할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MMF시장에서 계속 단기채를 사 주면 MMF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미국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질 수도 있다. 단기채 시장을 떠받치는 자금이 대폭 줄어들면 단기채 금리가 갑자기 올라가는 ‘발작현상’이 일어난다.
이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남은 구원투수는 역시 연준이 될 것이다. 연준은 5월초 몰래 양적완화를 단행한 바 있다. 일명 ‘스텔스(stealth) 양적완화’다. 당시 10년물 국채 금리가 4.5%를 돌파하자 다급해진 연준이 4일간에 걸쳐 총 436억달러를 풀어 장·단기국채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이는 매월 50억달러씩 양적긴축 중인 연준의 기조와 상반되는 조치다. 덕분에 10년물 국채 금리를 크게 내릴 수 있었다.
베센트 계획은 스테이블코인도 동원한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업체들이 미국 단기채를 매입해야 하는 법안이 제정됐다. 베센트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지금보다 10배 이상 키우겠다고 하지만 늘어나는 단기채를 매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중간선거 진다면 모든 계획은 끝장
베센트의 조치들이 완벽해 보이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단기채 발행만으로 유동성이 폭증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연준이 개입해서 돈을 찍어 단기채 시장을 떠받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수 있다. 돈이 풀려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데는 시차가 존재한다. 통상 12~18개월 걸린다. 미국의 중간선거는 2026년 11월이다. 물가가 오른다 하더라도 내년 연말이고 그러면 중간선거가 끝난다. 베센트가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다.
베센트 계획에 중대한 하자가 일어날 수도 있다. 관세 여파다. 올해 2분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관세만 부과했지만 8월 7일부터는 상호관세까지 부과했다. 상호관세가 부과되면 수출국가가 그 비용을 흡수할 수도 있지만 지금의 상호관세율이 워낙 높기 때문에 이를 수출기업이 다 부담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이 부담은 미국 소비자한테 전가될 것이다. 올 연말이면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공화당이 중간선거에서 진다면 베센트의 모험은 수포로 돌아간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