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 높은 충원율에도 합격선 여전히 상위권
반도체·IT 분야 중심 확산, 종합전형 선발 비중 높아 … 과학고·영재학교 지원율 두드러져
계약학과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산업체와 대학이 협약을 맺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계약학과는 장학금 지원은 물론 졸업 후 채용까지 어느 정도 보장돼 취업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올랐다. 2006학년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시작으로 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반도체 자동차 통신 IT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약학과가 신설되고 있다. 특히 2025학년 대입에서는 의대 증원 여파로 계약학과의 충원율이 크게 상승했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의 경우 충원율이 990%에 달하는 등 전례 없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충원율이 높다고 해서 합격선이 낮은 것은 아니다. 최초 합격선은 여전히 상위권 대학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계약학과 진학을 고려하는 수험생들은 신중한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 2025 대입 결과를 토대로 계약학과의 특성과 지원 시 고려사항을 분석했다.
2006학년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시작으로 2011학년 경북대 모바일공학전공, 2021학년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와 고려대 반도체공학과가 신설됐다. 2023학년에는 고려대 스마트모빌리티학부와 차세대통신학과,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카이스트(KIST, 한국과학기술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포스텍 반도체공학과가 새롭게 모집을 시작했다. 2024학년에는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 지스트(GIST, 광주과학기술원), 디지스트(D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유니스트(UNIST, 울산과학기술원) 등 과학특성화대학의 반도체공학과, 가천대 클라우드공학과, 숭실대 정보보호학과, 2026학년에는 성균관대와 삼성SDI가 연계한 배터리학과가 문을 연다.
계약학과는 반도체 분야가 가장 많다. 이 외에도 자동차 통신 IT 정보보안 디스플레이 미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운영되고 있다.
◆종합전형 중심 선발, 과고·영재학교 강세 = 계약학과는 교과전형보다 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경우가 많다. 교과전형으로 계약학과를 선발하는 대학과 전형은 가천대 학생부우수자전형, 서강대 지역균형전형, 연세대 추천형, 한양대 추천형 등이 있다.
종합전형 내에서도 서류 100%로 선발하는 일괄 합산 전형과 1단계 서류 100%·2단계 서류+면접 점수로 최종 합격자를 가르는 단계별 전형으로 나뉜다. 서류 100%로 선발하는 대학과 전형은 고려대 학업우수전형, 서강대 일반전형, 성균관대 탐구형, 한양대 서류형 등이다. 면접을 실시하는 대학이나 전형은 면접 반영 비율이 30~50%로 높은 편으로, 학업 역량과 진로 역량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일부 대학은 수능 최저 학력 기준도 적용하니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정제원 서울 숭의여고 교사는 “계약학과의 경우 정시보다 수시 선발 비중이 높다”며 “수시에서는 서류 평가를 통해 학업 역량뿐만 아니라 관련 분야에 관한 관심을 토대로 진로 역량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에 종합전형 비율이 높다”라고 설명한다.
계약학과는 일반고에 비해 과학고와 영재학교 학생의 선호가 높다. 과고와 영재학교는 수학·과학을 좋아하고 실험·실습과 주제 탐구 실험 등 깊이 있는 교육과정을 공부해 진로나 관심 분야에 확신이 뚜렷한 학생이 많다.
정 교사는 “성균관대와 고려대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의 경우 과고와 영재학교 학생 합격 비율이 60~80%에 달한다”며 “종합전형에서는 과고·영재학교 학생이 일반고에 비해 경쟁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반고 학생은 과학 관련 깊이 있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특정 분야에 확신을 갖기 어렵다”며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진로가 결정되는 부담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고 학생은 경쟁률이나 합격선이 높은 계약학과보다 한 단계 높은 대학의 공학 계열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의대 증원 여파로 충원율 990%까지 급상승 = 의대 증원이 있었던 2025학년 대입에서는 계약학과의 충원율이 여느 해보다 높았다. 계약학과와 서울대·의약학계열에 중복으로 합격한 수험생이 많아 학생들의 이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성균관대 2025 종합전형 탐구형에서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10명 모집에 99명이 지원해 33.2: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30명을 선발하는 과학인재 역시 12.77:1의 경쟁률을 보였다. 타 모집 단위와 달리 충원율도 상당해 탐구형은 예비 99번, 과학인재는 예비 93번까지 충원 합격했다.
권영신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실장은 “2006학년 첫 신입생을 선발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매년 경쟁률이나 합격선이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탐구형에서 10명을 선발했는데 충원자가 99명 발생해 충원율이 990%에 달했다”며 “입학처에서 등록 포기 사유를 물으니 ‘지역 의대 등 의약학 계열 진학’이라고 답한 학생이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원율이 이렇게 높게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의대 증원 여파인 듯하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도 탐구형에서 10명 모집에 충원 43명이 발생해 충원율 430%를 기록했다.
종합전형을 학업우수와 계열적합으로 이원화해 운영하는 고려대는 계열적합의 충원율이 더 높았다. 학업우수는 일반고가 주로 지원하는 반면 계열적합은 과고나 영재학교 학생의 지원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2025학년 고려대 반도체공학과 학업우수는 10명 모집에 경쟁률 13.30:1을 기록했는데 충원 합격 순위는 8번에 그쳤다. 같은 전형 차세대통신학과(10명 모집)는 경쟁률 19.60:1에 충원 합격 순위 7번, 스마트모빌리티학부(10명 모집)는 경쟁률 14.30:1에 충원 합격 순위 2번이었다. 계열적합에서는 10명을 모집하는 반도체공학과가 경쟁률 15.60:1에 충원 합격 순위 19번, 10명을 모집하는 차세대통신학과가 경쟁률 12.0:1에 충원 합격 순위 12번, 20명을 모집하는 스마트모빌리티학부가 경쟁률 13.80:1에 충원 합격 순위 31번을 기록했다.
한양대 교과 추천형에서 반도체공학과의 최종 합격자 50% 컷은 1.22등급, 70% 컷은 1.28등급이었다. 기계공학과는 1.48등급(50% 컷)과 1.54등급(70% 컷), 융합전자공학부는 1.46등급(50% 컷)과 1.49등급(70% 컷)이었다. 연세대 교과 추천형도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50% 컷이 1.15등급, 70% 컷이 1.2등급이었다. 신소재공학과는 1.25등급과 1.27등급, 전기전자공학부는 1.2등급과 1.26등급을 기록했다.
정시에서도 합격선이 높게 형성됐다. 가천대의 경우 의예과와 약학과를 제외하면 대다수 모집 단위의 백분위 70% 컷 평균이 80 초반에 형성됐지만 클라우드공학과는 89.6으로 높았다. 숭실대도 타 모집 단위에 비해 정보보호학과의 백분위가 91.83으로 높았다. 다만 정시에서는 대학별 환산 방식이 각각 다른 점을 고려해야 한다.
권 입학사정관실장은 “성균관대의 경우 충원율이 높아도 지원자 성적대가 굉장히 촘촘한 편이라 50% 컷과 70% 컷의 격차가 크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허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연구원은 “계약학과 합격선은 해당 대학 중위권 또는 그보다 살짝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최초 합격자 합격선은 높지만 중복 합격으로 이탈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상위권 대학 계약학과의 최초 합격선은 서울대 공대 성적 정도로 예상되지만 충원율이 높으면 최종 컷은 낮아진다”며 “실제로 고려대와 연세대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 합격자 끝선은 한양대 공대 합격선까지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학과 진학을 고려한다면 다소 공격적인 지원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소장은 “2026 대입에서는 의대 증원이 철회되면서 계약학과 합격선이 작년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교육과정 특성 파악이 지원 전략의 핵심 = 계약학과는 기업체에서 채용 목적으로 선발하는 만큼 일반 공학 계열에 비해 밀도 있는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정 교사는 “반도체공학과를 졸업하면 일반 신입사원과 같은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사업부의 설계 파트로 배치돼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 졸업 후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만큼 2학년 이후부터 실험, 프로젝트, 현장 실습 등으로 교육과정이 굉장히 빡빡해진다"며 "장학 제도, 인턴십 프로그램, 해외 연구소 견학 등 혜택도 많지만, 이것만 보고 지원하기보단 해당 분야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입학과 동시에 진로가 정해지는 만큼 학과 홈페이지에 교육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한다.
김기수 기자·민경순 내일교육 리포터 lena@naeil.com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중위권 수험생 '주목'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는 수도권 대학과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운영 중이다.
교육부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선도(전문)대학 육성사업’을 바탕으로 2018년에 시작해 현재 가천대 경기과학기술대 경일대 구미대 국립공주대 명지전문대 동강대 동의대 동의과학대 목포대 백석문화대 부산대 부산과학기술대 서울시립대 순천향대 전남대 한국공학대 한밭대 등 18개 대학 68개 학과가 참여 중이다. 4차 산업혁명에 맞추어진 다양한 학과들이 개설되어 있으며, 대다수 모집 인원을 종합전형에서 선발한다. 수시에서 선발하지 못한 인원만 정시에서 선발하는 형태다.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는 1학년 학비는 정부의 희망사다리 장학금을 통해 전액 지원받을 수 있고, 2학년부턴 기업에서 급여를 받는다. 학비도 해당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 50% 이상을 지원한다. 보통 3년 교육과정을 통해 4년제 학위를 취득하는 데다 2학년부턴 산업체 근무와 학업을 병행한다. 부담이 크지만 실무 중심의 맞춤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반도체 IT 계약학과에 비해 경쟁률은 그리 높지 않다.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조기 취업형 계약학과 선도대학 종합 포털(www.earlyuniv.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각 대학 모집 단위별로 참여하는 취업 기관도 소개하고 있다.
김기수 기자 k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