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방조’ 한덕수 구속 갈림길
헌정사상 첫 전직 국무총리 구속 심사
국무위원·계엄해제방해 수사 ‘분수령’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구속 여부가 이르면 27일 결정된다. 전직 국무총리가 구속영장 심사를 받는 건 헌정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한 전 총리의 신병 확보 여부는 내란 가담·방조 의혹을 받는 다른 국무위원과 국회 계엄 해제 의결 방해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특검 수사의 또 하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정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 혐의를 받는 김건희 여사와 내란 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를 받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앞서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 24일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한 전 총리에게 적용된 혐의는 내란 우두머리 방조와 위증, 허위공문서 작성, 공용서류손상,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허위공문서 행사 등이다.
한 전 총리는 제1의 국가기관이자 국무회의 부의장인 국무총리로서 지난해 윤 전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해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오히려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해 계엄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실제 당시 국무회의에는 일부 국무위원들만 소집됐고, 정족수가 채워지자마자 회의가 시작돼 5분여 만에 종료되는 등 형식적으로 진행됐지만 한 전 총리가 정상적인 심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에는 소홀했다는 게 특검팀의 판단이다.
한 전 총리는 또 최초 계엄 선포문의 법률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사후 선포문을 작성하고 폐기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특검팀은 이같은 점에서 한 전 총리가 부작위(해야할 것을 하지 않음)를 넘어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방조했다고 봤다.
위증 혐의도 있다. 한 전 총리는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서 ‘계엄 선포문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특검 조사에서 그가 계엄 당일 정장주머니에서 계엄 선포문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꺼내는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CC)TV 자료를 제시하자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선포문을 받았다”고 기존 진술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특검은 영장 심사에서 혐의의 중대성과 함께 한 전 총리가 계속 말을 바꿔온 점 등을 들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공동 국정운영 담화 발표, 대통령 권한대행 당시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대선 출마 선언 등 비상계엄 이후 한 전 총리가 보여 온 행적을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한 시도로 부각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한 전 총리측은 ‘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기존 입장과 함께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이르면 이날 오후 늦게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법원이 한 전 총리의 내란 방조 혐의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놓는지에 따라 남은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내란 가담·방조 의혹을 받는 다른 국무위원들에 대한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팀은 지난 25일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박 전 장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최초로 불렀던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그는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 간부회의를 소집해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출입국 금지 업무 담당 실무자를 출근하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특검팀은 압수수색 영장에 박 전 장관을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 피의자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계획을 먼저 들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계엄 당시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지시 문건을 받은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비상계엄 해제 방해 의혹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경호 의원과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추 의원은 당시 국민의힘 의원총회 장소를 수차례 변경해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 전 총리의 신병이 확보되면 특검팀은 그를 상대로 당시 통화 내용 등을 추궁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한 전 총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특검 수사에도 일정부분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인사들에 대한 수사 동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
한편 특검팀은 26일 계엄 가담 의혹이 제기된 안성식 전 해양경찰청 기획조정관 관사와 자택, 해경 본청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안 전 조정관은 윤 전 대통령,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같은 충암고 출신으로 비상계엄 당시 파출소 청사 방호를 위한 총기 휴대 검토와 계엄사령부 파견 인력 증원 등을 주장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