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지, 주위토지통행권 인정해야”

2025-08-27 13:00:02 게재

자기 땅에 펜스 설치한 토지주

1심 승소→2심 패소→3심 패소

대법원 “통행권 침해” 파기 환송

토지 주변에 다른 통행로가 일부 있더라도 농업 경작에 부적합하면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주위토지통행권은 사방이 다른 토지에 둘러싸인 땅의 소유자가 도로로 나가기 위해 이웃 토지를 지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경사가 심한 야산이나 배수로 등으로 사실상 경작에 필요한 장비 운반이 어려운 경우, 단순히 대체 통행로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통행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광주에 있는 1000㎡ 규모 토지주인 A씨가 인근 토지주 B씨를 상대로 낸 통행방해금지 및 주위토지통행권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0년 12월 광주시 소재 토지(1041㎡)를 강제경매로 취득한 뒤 이곳에서 수박과 두릅 등을 경작했다. 이 토지는 사방이 다른 토지에 둘러싸인 맹지로, B씨 소유 인접 토지(640㎡)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

B씨는 2021년 8월 자신의 토지에 펜스를 설치했다. 그 결과 A씨의 통행이 차단됐다. A씨는 B씨를 상대로 펜스 철거와 주위토지통행권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 토지 중 폭 1m, 길이 35.68m 구간을 통행하지 않으면 도로 출입이 불가능하거나 과다한 비용이 든다”고 봤다. A씨의 주위토지통행권을 인정한 것이다.

1심은 B씨가 제시한 대체 경로를 검토했다. 하천 둑길과 야산을 거치는 길이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바닥에 흙과 돌, 나무뿌리가 드러나 있다”며 “개천 쪽으로 경사져 사람 통행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야산 구간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잡초가 우거지고 배수로로 움푹 파여 있다”며 “경작 장비 운반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둑길과 임야를 통해 A씨 토지에 도달할 수 있다. 경사지와 배수로 구간을 피해 통행할 수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임야는 야산이지만 B씨 토지에는 농작물이 많이 심어져 있다. 임야 소유자들이 통행을 막은 사정도 없다”며 A씨 청구를 기각하고 B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불복해 상고했고, 대법원은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며 2심 판결을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은 “민법상 주위토지통행권은 그 토지 소유자가 주위 토지를 통행 또는 통로로 하지 않으면 전혀 출입할 수 없는 경우뿐 아니라 과다한 비용을 요하는 때에도 인정할 수 있고, 이미 기존 통로가 있더라도 실제로 통로로서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원심 판단에는 주위토지통행권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음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단순히 다른 길이 있다고 해서 통행권을 부인할 수는 없다는 원칙과 이를 판단할 때는 해당 토지의 실제 용도와 이용 목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기준을 재확인했다. 특히 농지의 경우 경작에 필요한 장비와 농자재 운반이 가능한지가 핵심 판단 기준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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